해가 갈수록 여름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년 뒤에는 보도블록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여름이 이렇게까지 더웠던 것 같지 않은데, 확실히 지구에 무슨 문제가 생기긴 생긴 모양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건 작년 8월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해서 해가 지고 나서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지독하게 더운 여름이었다. 이사를 하던 날이었다. 에어컨을 가져가려고 기사를 불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에어컨을 살펴보던 기사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안 되겠는데요?”
“왜요?”
“애초에 설치가 잘못돼서 튜브가 좀 찢어진 것 같네요.”
아뿔싸. 사실 그 에어컨은 내가 자취를 할 때부터 쓰던 것을 신혼집으로 가져온 것이다. 당시에 서비스센터에 문의를 하니 에어컨을 옮겨 다는 데 십몇만 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삿짐센터에서 나온 아저씨가 한쪽 구석에 붙어 있는 에어컨을 보더니, “저거 옮겨 달려면 돈 좀 들 텐데.”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 서비스센터에 연락해봤어요?”
“예.”
“십몇만 원 한다고 하죠?”
“예.”
“이거 그냥 우리한테 맡기면 오 만원에 해드릴 텐데.”
“예?”
그렇게 해서 이삿짐센터에서 나온 아저씨들에게 맡겼던 것인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그 전에도 몇 번인가 에어컨에서 입김처럼 더운 바람이 나와서 서비스 센터에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출장을 나온 기사는, 냉매가 새는 것 같은데 아마 설치할 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며 임시방편으로 냉매만 충전해주고 돌아갔다.
쓰지도 못하는 에어컨이지만 막상 버리자니 아까워 베란다에 세워뒀다. 에어컨이 없으니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었지만 시원하기는커녕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사 온 첫날, 제이와 나는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에어컨을 바라보며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다음 주말에 꼭 에어컨 사러 가자.”
“응. 안 그러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주말까지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아있었다. <임진록>에 보면 일본인들이 조선의 의병장이자 승려였던 사명당을 태워 죽이기 위해 무쇠로 만든 방에다 넣고 밖에서 불을 지펴 방을 달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다음날 문을 열어보니 사명당은 수염과 눈썹에 고드름이 언 채로 덜덜 떨고 있다가 “너희는 손님이 자는데 불도 안 때느냐!” 하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후예임에도 사명당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매일 밤마다 열대야가 불을 지피는 방에 갇힌 채 흐물흐물 녹아야 했다.
마침내 일주일이 지나갔을 때, 우리는 쑥과 마늘로 백일을 버텨낸 곰처럼 감격에 겨워 동네에 있는 전자제품 매장을 방문했다. 바깥의 날씨는 선인장도 말려버릴 정도로 뜨거운데도 매장 직원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까지 맨 차림이었다. 매장 안이 참 시원하죠? 저희 에어컨 덕분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조급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느긋한 표정으로 매장에 전시된 에어컨들을 살펴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무거나 가져다 달아두고 싶었다. 그런데 매장 직원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지금 주문이 밀려서 설치하시려면 일주일은 걸릴 겁니다.”
직원은 눈썹까지 찌푸려가며 그렇게 말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는 표정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달리 별 수도 없지 않겠냐는 표정 같기도 했다. 다시 일주일이라니. 이제는 선풍기도 지칠 대로 지쳐서 헉헉거리며 뜨거운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아무리 사임당이라고 해도 이쯤 되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뭐.”
우리는 최대한 빨리 설치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뜨거운 거리로 나왔다.
지난 일주일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아무런 대책 없이 다시 일주일을 견디려고 하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뭔가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선풍기를 시원하게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게 되었다. 선풍기 모터 부분에 얼음주머니를 묶어 놓으면 바람이 차가워진다는 것이었다. 작동 원리를 읽어보니 과연 그럴듯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제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부터는 좀 괜찮을 거야.’
그날 저녁, 선풍기 모터에다 접착테이프로 얼음주머니를 고정시키고 있는 나를 제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고 선풍기를 틀었을 때 정말로 시원한 바람이 나오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나는 진지공사를 끝낸 군인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불행히도 우리의 기쁨은 채 삼십 분도 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주머니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어갔다. 선풍기는 미안한 표정으로 더운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프라이팬 위의 고등어처럼 앞면이 다 익으면 뒷면으로, 뒷면이 다 익으면 앞면으로 돌려가며 잠을 설쳐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약속한 대로 에어컨이 도착했다. 에어컨을 들고 현관문 앞에 나타난 설치 기사들을 보자 고속도로에서 오랫동안 소변을 참다가 휴게소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믿음직한 얼굴로 척척 설치를 끝낸 기사가 리모컨을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여기 이 버튼을 누르시면 시원한 바람이 나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우리 집에 시원한 바람이 허락되는 겁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기적을 행한 뒤 에어컨 기사들은 서둘러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에어컨 설치가 밀려서 빨리 다음 집에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실에 드러누운 채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제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내 옆에는 지난 몇 주 동안 밤낮없이 달려온 선풍기가 마라톤 전투의 전령처럼 쓰러져있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열대야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살아남은 것이다.
참, 그동안 줄곧 머쓱한 얼굴로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옛 에어컨은 설치 기사들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