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근처에서 파란 우산을 사던 날

by 봄에 핀 코스모스

한 십오 년쯤 전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었다. 출국하기 전날 누군가가 내게 우산을 사줬다. 삼단으로 접어서 가방에 넣을 수 있는 하늘색 우산이었다. 호주에는 비가 자주 온다더라. 그렇게 말하며 우산을 건네줬던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막상 가보니 호주는 늘 햇볕이 쨍쨍했다. 동네 강아지들은 그늘에 누워 마른 혀를 쭉 뺀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하늘색 우산은 좀처럼 내 가방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가방에서 우산을 한번 꺼내본 일이 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우산이 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일 수도 있고, 저녁에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일지도 모른다.

며칠 후, 뉴스에서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이제야 쓸 일이 있겠군’ 하면서 가방을 열어보았는데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서 꺼내보고 도로 집어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하늘색 우산은 기지개 한번 활짝 펴보지 못한 채 국제미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호주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위에서 물 풍선을 마구 집어던지는 것처럼 지독한 비였다. 다행히 호주의 장맛비는 잠시 동안 피하고 있으면 금방 그치는 게릴라성 소나기에 가까웠다. 장마에도 호주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과 함께 건물 처마 밑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을 때마다 버스에 두고 내린 하늘색 우산을 떠올리곤 했다.

연애를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홍대 근처에서 제이를 만나자마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우산부터 하나 사야겠다며 가까운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 말고도 우산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이 서너 명 더 있었다. 그날 내가 산 우산도 호주에 가져갔던 것처럼 파란색 우산이었다. 이번에는 접이식이 아니라 장우산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권투선수가 펀치를 내지르는 것처럼 빠르고 믿음직하게 펼쳐졌다. 그날 그 파란 우산을 함께 쓰고 걸으면서 제이와 나 사이의 거리는 한 뼘 정도 더 가까워졌다. 결혼한 뒤에도 그 우산은 한동안 우리 집 신발장에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잃어버린 모양인데 언제 어떻게 잃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제 발로 터벅터벅 걸어 나간 건 아닐 테고.

요즘은 워낙 비 오는 날이 드물다 보니 우산을 쓸 일이 별로 없다. 신발장에 서있는 우산들은 빗방울보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날이 더 많다. 주인의 무관심과 실업이 이어지는 동안 우산은 신발장 안에서 묵묵히 낡아가고 있다.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스스로 집을 나가버렸다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홍대 근처에서 산 파란 우산은 좀 아쉽다. 매일 조금씩 제이와 가까워지고 있던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산인데.

비가 그치고 나면 우산은 곧 잊힌다. 어느 노랫말처럼 날씨가 개고 나면 신발장 속에 세워져 잊혀 버리는 것이 우산의 운명인 것 같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다가 문득 그 익숙하고 당연한 행위, 그러니까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는 그 행위를 반복하는 동안 내가 무언가를 잊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문제없이 마치 무빙워크처럼 무난히 흘러가는 시간들 위에 선 채로 노트북을 켜고, 사람들을 만나고, 퇴근 후에는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는 나의 생활에 어딘가에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오전 내내 거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날 오후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퇴근을 알리는 노래가 나오자마자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 영어공부를 하려고 교제를 펼치려는 제이를 졸라서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들을 제이에게 이야기했다. 요즘 나는 당신의 존재에 익숙해진 나머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염려가 된다.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매일 하루에 얼마쯤은 동네를 돌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길을 걸을 때는 항상 손을 잡고 걷는다. 내가 출근할 때면 제이는 늘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준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출근한 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의 제이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제이의 마음은 요즘 날씨가 어떨까? 최근 들어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맑은 날이 내내 이어지다 보면 우산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지내는 것처럼.

누구나 배우자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들 곁에서 걷고 있는 이의 걸음이 괜찮은지, 혹 무릎이 아프거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진 않았지 제대로 살펴보고 있기나 한 걸까. 묵묵히 잘 따라오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져버리거나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그날그날의 날씨를 점검하는 기상학자처럼 아내의 마음을 살피며 살고 싶다. 오늘은 그곳의 날씨가 어떤지, 혹시 비가 오는 것은 아닌지 가장 먼저 눈치채고 우산을 들고나가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싶다. 홍대 근처에서 파란 우산을 사던 날처럼 매일 조금씩 아내와 가까워지는 중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문득 그 파란 우산이 그리워진다. 거실에 나가보니 제이는 텔레비전을 보며 간식을 먹고 있다.

“여보, 예전에 홍대 근처에서 샀던 그 파란 우산 기억 나?”

“응.”

“그거 혹시 어디 갔는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 왜 갑자기?”

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그 파란 우산을 사던 날의 마음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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