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5년이 조금 넘었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다. 아직까지는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명절에 친척 어른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그러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으라고 한다. ‘너 나중에 환갑 넘어서도 애들 뒤치다꺼리할 거야?’ 하고 엄포를 놓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괜스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정말 아이를 갖길 원하는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덜컥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건 태어날 아이는 물론 우리 부부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가끔씩 엘리베이터에서 옆집에 사는 꼬마를 만날 때가 있다. 한 다섯 살 정도 되는 것 같다. 나를 보면 양손을 배꼽에 얹고,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내게도 저만한 딸아이가 있어서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현관으로 달려 나와 저렇게 인사를 해준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보게 된다. 대학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인사할 때는 귀엽지.”
두 딸의 아빠인 선배는 뭔가 덧붙일 이야기가 남은 것 같았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은 제이다.
“당신은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주변에 물어보면 키우는 재미는 딸이 더 좋다고 하던데.”
“당신 닮은 딸이라면 아마 호락호락하지 않을걸.”
“나중에 아까워서 어떻게 결혼시키나.”
“아무튼 책도 많이 읽고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유학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어.”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순식간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이 유학을 가는 상황까지 전개되곤 한다. 그쯤 되면 둘 다 너무 멀리까지 왔다는 생각에 머쓱해진다. 하지만 잠시 아무 말 없이 걷다가 다시 대화가 시작될 때는 조금 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런데 정말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걸까?”
“둘이 사는 것도 이렇게 팍팍한데 아쉬움 없이 키워줄 수 있을까?”
“이제 부모가 가진 게 많을수록 자녀들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던데.”
“개천에서도 용 난다는 것도 다 옛말이지.”
이쯤 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벌써부터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미안해질 것이 확실한 관계를 굳이 만들어야 하는 걸까? 사소한 것이라도 남들에게 미안해할 일을 만드는 걸 싫어하는 내가. 제이는 그저 쓸쓸하게 웃을 뿐이다. 아이에 대한 대화도 그 정도에서 마무리된다.
지난번 산책에서도 그런 식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서재에 앉아 책을 뒤적거리다가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 침실에 들어가 보니 그때까지 제이는 깨어있었다. 피곤하지, 하며 제이는 내 볼을 가볍게 만져줬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겨도 제이가 지금처럼 내게 관심을 가져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상대로 질투를 느끼다니,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제이를 재우고 나와서 설거지를 한 후 녹차를 끓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보며 내일 회사에 가서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시 아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고, 그래서 제이는 나보다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고, 그러는 와중에 나는 그 아이 때문에라도 계속 회사에 매여 일을 해야 한다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는 제이와 함께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고, 나는 거실에 혼자 나와 녹차를 마시며 내일을 염려하고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무서운 꿈을 꾼 것인지 잠에서 깨어나 내게로 달려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딸일까, 아들일까. 누구를 닮았을까.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아이일까. 찻잔을 손에 든 채 나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