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은 너무 짧아

by 봄에 핀 코스모스

대학생 때는 밤이 참 길었다. 다음 날 학교 갈 걱정도 별로 하지 않았고 체력도 좋았기 때문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곤 했다. 가끔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참으로 태평스러운 시절이었다.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확실히 밤이 짧아졌다. 여전히 밤새 놀 수 있는 체력은 남아 있지만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부분을 읽고 있는 중이라도 새벽 한 시가 넘으면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덮어야 한다. 보고 있는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면서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어도 밤새 영화를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나저나 왜 내가 좋아하는 옛날 영화들은 늘 자정이 다 되어서야 슬금슬금 케이블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이순신 장군에게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았듯이 그래도 내게는 아직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훨씬 느긋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금요일 밤이다. 왜 그런지는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두 칸밖에 없다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첫 번째 칸을 쓸 때와 두 번째 칸을 쓸 때의 마음가짐은 확연히 다르다.

그렇다 보니 금요일 밤은 도저히 일찍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고무줄처럼 앞뒤를 잡고 길게 늘여놓고 싶다. 금요일은 우선 산책하는 시간부터 길어진다. 한 시간을 넘는 건 기본이고 한참을 이리저리 걷다가 거의 열 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곤 한다.

“당신은 오늘도 늦게 잘 거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이가 묻는다.

“아마도.”

당연하지, 하고 쉽게 긍정해버리면 기쁨이 죄다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이승철의 노래 중에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라는 명곡이 있다. 소리 내지 마. 우리 사랑이 날아가버려.


제이는 잠이 많은 편이라 금요일에도 대개 자정이 되면 잠자리에 든다. 제이가 침실로 들어가면 나는 베개를 갖고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 앞에 눕는다. 일주일 만에 다시 잡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는 없지. 지난주에는 채널만 돌리다가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어. 오늘은 꼭 재미있는 영화를 한편 보고야 말리라. 사뭇 의지에 가득 찬 상태로 리모컨을 잡는다. 우선은 케이블 영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간단하게 VOD에서 검색해서 영화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돈이 든다. 큰돈은 아니지만 어쨌든 돈이 든다. 그것보다는 채널을 돌려보다가 걸리는 좋은 영화를 보는 편이 훨씬 저렴하고 나름 재미도 있다. 회를 먹기 위해 횟집에 가는 것보다는 낚시를 택하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채널이 너무 많다. 대충 돌려봐도 이백 개는 넘는 것 같다. 영화 채널을 찾다가 다른 길로 빠질 위험도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한 주간의 야구 경기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든가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시트콤 같은 것들이 채널을 돌리는 중간중간에 슬쩍 걸리곤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동안 거기에 퍼지르고 앉아 푹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새벽 한 시다.

지금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몇 시쯤에나 끝날까? 아마 거의 밤을 새우게 될 텐데, 그럼 내일은 피곤해서 하루를 다 날리게 되겠지? 아무래도 영화를 보기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아쉽지만 영화는 다음 주로 미루고 이번 주에는 러닝타임이 짧은 프로그램들 위주로 가야겠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나는 계속 채널을 돌린다. 그렇게 새벽 두 시가 넘도록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다 보면 갑자기 인생이 훌쩍 흘러가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워지곤 한다. 그러면 나는 서둘러 텔레비전을 끄고 침실로 들어간다.


“어제 재미있게 보냈어?”

다음 날 오후,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내게 제이가 묻는다.

몰라, 여보. 금요일 밤은 너무 짧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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