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친하게 지내던 H차장이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항상 도시락을 싸다니는 사람이 무슨 일일까? 함께 식사한 지도 오래되었던 터라 반갑긴 했지만 뭔지 모르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나, 조만간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야.”
탄탄면 국물을 후루룩 떠 마시고 있던 내게 H차장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왜요?”
“그냥… 좀 쉬려고. 생각도 좀 정리하고.”
그녀는 이미 몇 달 전부터 결정을 내린 듯했다. 팀장에게는 벌써 이야기를 했고 퇴직 날짜까지 다 정해졌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남편도 잠시 일을 쉬기로 하고 2개월 일정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는 H차장의 계획을 들으면서 나는 제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제이 역시 좀 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한두 달이라도 나와 함께 쉬면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둘 다 은퇴하고 나면 그때는 좋든 싫든 종일 붙어있게 될 텐데 뭘.”
“그때는 그때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잠시라도 쉬면서 둘이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한 번쯤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어?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까 다들 군소리 없이 출근하는 거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같은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 막연히 초조해졌다.
누군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선 부럽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다음에는 그 사람은 그럴 수 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들을 나열해본다. 그 사람과 나의 차이를 죽 늘어놓은 다음, 역시 나는 이래서 그만두지 못하는 거지, 나도 이 사람처럼 이러저러한 상황이었다면 벌써 그만뒀을 텐데, 하고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사람은 집에 돈이 좀 있지 않은가, 혹은 자기 소유의 집이 있지 않은가, 혹은 그 사람 아내(혹은 남편)가 공무원이라 부부 중 한 사람은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가 등등.
회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과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각각 시소의 양쪽 끝에 올려놓고 시소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를 기다리는 사이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H차장과는 약 십 년쯤 전에 사수, 부사수 관계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아직 신입사원 티를 전혀 벗지 못해 천둥벌거숭이 같던 시절이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금세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다. 내게는 H차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이후로 H차장은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언제나 친누나처럼 마음을 써주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 것이다. 자, 누나는 이만 내린다. 너도 얼른 마음을 정해야지? 하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길을 헤매고 있을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마음속에서 계속 시소가 움직이고 있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에도 제대로 무게를 주지 못하고 있을 때는 잠깐 시소에서 내려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이는 말한다. 시소를 타고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무게를 착각하고 있던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글쎄. 내 시소는 과연 언제쯤에나 멈추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