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부부싸움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가끔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상대의 말을 오해하는 일은 있었다. 그렇다고 언성을 높이거나 가시 돋친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다른 부부들은 도대체 왜 부부싸움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바꿔준 건 결혼으로 치면 나보다 선배인 친구였다. 부부싸움에 대한 나의 견해를 듣던 친구는 이제 막 담배를 배우기 시작한 중학생을 바라보는 대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야, 그런 게 바로 부부싸움인 거야.”
“뭐가?”
“의견이 다르고 상대방을 오해하고 그러는 거.”
“그래?”
“그럼 뭐 물건이라도 집어던지고 죽니 사니 해야 부부싸움인 줄 알았냐? 그런 건 말 그대로 그냥 싸움이지 인마.”
그제야 나는 우리도 다른 부부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부부싸움은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하 호호하며 즐거웠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상대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재빨리 복기해보지만 상대의 감정이 상하기 시작한 진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진원을 파악한다고 한들 이미 건물이 흔들리며 땅이 갈라지고 있는 마당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지진과 더 비슷하다. 일단 시작되면 우선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상책이다. 몸을 낮추고 진동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흔들림이 멈췄다고 해서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너졌던 건물들을 바로 세우고 땅이 갈라진 부분들은 꼼꼼히 메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에 또 지진이 왔을 때는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제이는 한번 감정이 상하면 하루 이틀 정도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혼자 외출을 했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오기도 한다. 굳게 입을 닫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제이를 볼 때면, 집에 불이라도 나기 전에는 절대로 내게 말을 걸지 않을 것만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개 서재나 화장실 같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여 몸을 낮추고 기다린다.
문제는 그런 날이면 제이가 식사도 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자로 대충 때우거나 혼자 컵라면을 끓여 먹고는 다시 침대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나는 방값이 밀린 하숙생처럼 밥 달라는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게 된다. 그런 날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도 뭣하다. 어쩐지 몸을 낮추고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대충 과자로 때우게 되는데 집에 과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과자를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대로 끼니를 거를 때가 더 많다.
하루는 제이가 저녁 반찬으로 오징어볶음을 해주겠다고 해서 같이 장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잘 손질된 오징어가 든 봉지를 손에 들고 함께 집에 돌아올 때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어떤 문제로 대화를 하다가 감정이 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제이는 외출을 했다. 식사는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행선지도 밝히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나는 저녁을 굶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배가 너무 고파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려고 냉동실 문을 열었다. 낮에 샀던 오징어가 냉동실에 들어있었다. 아마도 그 오징어는 당분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영영 잊혀 버릴지도 모른다.
냉동실 문을 닫고 다시 안전지대로 돌아왔다. 방금 전에 본 오징어가 꼭 나 같았다. 문득 내게 부부싸움의 정의를 새로 내려준 친구가 떠올랐다. 비로소 부부싸움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건 냉장고에 처박아둔 오징어가 된 기분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