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놀이터 의자에 앉아 동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한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게임을 좋아해서 밖에 나가서 잘 놀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놀이기구 사이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나무줄기 사이를 골대로 해서 축구공을 차는 모습이 내가 어릴 때 하고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 중에는 우리가 ‘골목대장’이라고 별명을 붙인 남자아이가 있다. 대충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데 통통한 팔다리에 배가 뽈록하다. 가뜩이나 숱이 많은 머리를 파마까지 해서 언제나 방금 자다 깬 것처럼 머리가 붕 떠있다. 항상 불만이 가득한 듯 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만화 <스누피>에 나오는 아이들을 중 하나같다.
언젠가 제이와 산책을 나가는데 그 아이가 네발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 쪽으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까까머리에 몸집이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자전거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야! 놀이터에 사람 많냐?”
자전거를 탄 아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까까머리 아이가 잽싸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돌격 명령을 받은 병사 같았다. 그러고 보니 네발자전거에 앉아 까까머리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는 영락없이 말 위에 앉은 장군의 모습이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그 아이를 ‘골목대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까까머리 아이는 골목대장의 유일한 부하인 것 같았다. 골목대장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서든 까까머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골목대장과 까까머리의 주요 일과는 놀이터나 아파트 현관 계단을 배회하다가 여자아이들이 나타나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함께 놀 궁리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성공률이 꽤 높은 편인 것 같다. 만날 때마다 골목대장은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는 동안 줄을 잡고 있거나 놀이에 필요한 준비물을 나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뚱한 표정은 한결같다. 까까머리 역시 골목대장의 맞은편에서 고무줄을 잡고 서있거나 그를 도와 준비물을 나르고 있다.
제이는 골목대장을 꽤 귀여워하는 것 같다. 쑥 내밀고 있는 배며, 불만이 가득한 듯 부풀어 있는 볼을 볼 때마다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산책을 하다가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오면, “골목대장도 나와 있으려나?” 하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 역시 몇 번 마주치는 사이 정이 들었는지 며칠 동안 골목대장이 보이지 않을 때면 은근히 보고 싶어 진다. 그 뚱한 표정에 무슨 마성의 매력이라도 있는 걸까.
한번은 골목대장이 혼자서 놀이터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걸 봤다. 놀이터에는 골목대장 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날따라 까까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대장은 슬픈 표정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심부름을 시킬 부하도 없고 같이 놀 궁리를 할 여자아이들도 없이 혼자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골목대장을 보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착잡했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낮에는 집에 가봐야 늘 혼자인 건 아닐까?”
제이가 말했다. 늘 심술이 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외로움 때문일지 모른다며 제이는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그날 본 골목대장의 모습은 좀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골목대장의 작고 동그란 어깨를 내려다보며 그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놀이터에서 다시 만난 골목대장은 엉덩이 부근에 슬링백을 대롱거리며 여자아이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까까머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의 보조를 맞췄다. 골목대장은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지만 제이와 나는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