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좀 샐 뿐이야

by 봄에 핀 코스모스

신혼집으로 살던 빌라는 오층 건물이었는데 우리 집은 맨 위층이었다. 누가 위에서 뛰어다녀서 시끄러울 일도 없고 볕도 잘 들어서 좋았다. 그런데 장마철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자 사정이 달라졌다. 거실 창틀과 천장 사이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우리가 있을 땐 그러지 않았는데, 하며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 세입자로서 남의 집에 살다 보면 ‘집주인들이 있을 때는 절대 그러지 않았던’ 일들이 가끔 일어나곤 한다. 아무튼 집주인은 빠른 시일 내에 공사업자를 보내주겠다며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고 했다.

며칠 후 공사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대충 상황 설명을 해줬더니 아무래도 옥상 바닥 어딘가에 방수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빨리 공사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무래도 공사의 성격상 비 오는 날에는 곤란하고 맑은 날이 되어야 착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무실 창 밖을 내다보니 당분간은 계속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럼 맑은 날에 한번 찾아뵙죠.”

공사업자는 흐린 목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에도 비가 많이 내렸다. 자려고 누운 제이를 깨워 거실 창에 붙여뒀던 책상을 옮겼다. 우리는 바닥에 수건을 서너 장 깔아놓고 쪼그리고 앉아 물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지켜봤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제이는 내 표정을 보더니 장난스럽게 휙 돌아서 침실로 도망갔다.

“짜증 난 남편 얼굴은 싫어.”

거실에 비가 새는데도 소녀처럼 웃는 제이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짜증 내지 마. 비가 좀 샐 뿐이야.”

어느새 거실로 돌아온 제이는 내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려줬다. 자정이 되자 제이는 침실로 들어갔고 나는 계속 거실을 지켰다.

아무래도 수건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뭔가 다른 게 없을까 하다가 화장실에 있는 플라스틱 대야 세 개가 생각났다. 대야 세 개를 나란히 창가에 붙여놓고 대야마다 플라스틱 쟁반을 하나씩 비스듬히 세워서 한쪽 모서리를 창에다 붙였다. 예상대로 빗물은 비스듬히 새워놓은 쟁반 위로 떨어져 미끄럼을 타고 대야로 들어갔다. 대야의 위치를 좀 더 정확하게 조정했다. 오늘 밤에는 저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믿음직하게 서있는 대야들을 사진으로 남겨뒀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날부터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세 개의 대야와 세 개의 플라스틱 쟁반이 출동했다. 그것들은 초병처럼 나란히 서서 우리 집 거실을 지켰다.

결국 그 집을 떠나올 때까지 끝내 옥상 공사는 하지 못했다. 비 오는 날은 공사를 할 수가 없었고, 맑은 날에는 굳이 공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믿음직한 플라스틱 삼총사가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한때 우리 집 거실을 지켜주던 초병들이 생각난다. 비가 좀 샐 뿐이야, 하고 말하던 제이의 명랑한 목소리도 떠오른다. 그렇다고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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