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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케첩과 나의 미트파이.

로컬의 맛과 정통성 사이에서

by Kafka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미트파이라는 음식은 오랫동안 오래된 번역 소설에서나 마주치던, 실체 없는 음식이었다.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고급 식당에서 메인으로 주문하던 농어요리처럼. 직접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고, 그 맛이란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시간이 흘러, 이곳 서호주에서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한국에서 성인으로 보낸 시간을 넘어서고, 내 돈으로 밥을 사 먹는 나이가 되었다. 선택지가 고기냐 생선이냐일 때면 으레 고기를 고르곤 하기에, 여전히 농어요리는 내게 낯선 음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미트파이는 그렇지 않다.

미트파이는 이곳에서의 만두 같다. 길을 걷다 키오스크 가게나 편의점에 들어가 하나 사 먹을 수 있고, 마트 냉동 코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이크로웨이브에 몇 분만 돌려도 먹을 수 있고, 호불호도 심하지 않으며, 맛의 스펙트럼과 브랜드도 다양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메인으로 나올 때도 있지만, 결국 미트파이는 서민의 음식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한국에서도 미트파이 전문점이 하나둘 생긴다고 한다. 향신료가 과하지 않고, 식감과 풍미가 익숙해서일 것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흥미로운 글 하나를 마주쳤다.

한국의 미트파이 가게들이 정통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며,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미트파이에 라구가 아닌 반드시 그레이비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었다. 정통을 따르지 않으면 그건 더 이상 미트파이가 아니라는 듯한 어조였다. 그 글을 읽으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사는 이 서호주에서 미트파이는, 분명히 만두의 위치에 있다.


만두가 늘 간장과 함께하듯, 처음 내가 먹은 미트파이도 케첩과 함께였다. 그리고 수많은 호주인들이 여전히 미트파이를 먹을 때 토마토 소스, 정확히 말해 하인즈 케첩을 뿌려 먹는다. 라구든 그레이비든, 어차피 마지막 맛은 케첩이 덮어버린다.

만두도 생각해보자. 어떤 집은 부추를, 어떤 집은 김치를, 두부를 넣기도 하고 당면을 넣기도 한다. 어떤 만두가 정통인가를 두고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우리 할머니의 만두에 김치가 없다고 해서 누가 그 앞에서 "이건 만두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트파이도 마찬가지다.


그레이비가 추천되는 전통 방식일 순 있겠지만, 그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통을 따진다는 이들도 그레이비를 인스턴트로 낼 때가 많다. 나도 종종 코인 육수나 작은 스톡 패키지를 쓰듯이.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조차도 현대적인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한국인이 미트파이를 만든다는 건, 호주에서 호주인이 한국식 만두를 만들어 파는 것과 같다. 아무리 레시피를 지켜도, 어릴 적부터 맛보아 온 그 기억과 감각은 현지화 과정을 피해갈 수 없다. 그건 나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일은 냉동 미트파이를 마이크로웨이브에 돌려, 하인즈 케첩을 듬뿍 뿌려 먹어야겠다. 누군가는 그것이 정통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곳의 풍경과 함께 살아온, 딱 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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