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잡설2
불가능하다. 아주 오래전, 학력고사가 끝나고 수능이 끝나면 만점자 혹은 최고 득점자에게 각 언론사에서 인터뷰가 있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수능만점자가 나와서 방송출연에, 출판에 한동안 꽤 인기가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학교 교육에 충실했노라고. 과연? 인터뷰의 진실성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왜냐? 지금은 이런 답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한다고 해도 이제는 정말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학교 교육에 충실해 봐야 수능 고득점? 불가능한 걸 다 알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학교에서 수능을 준비하기 어렵다고? 어째 이런 일이.
그럼 누가 수능을 잘 보는가? 간단히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누가 고득점을 맞았는지 평가원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평가원은 절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 아마 공개하는 순간 비난받을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수능은 상위권 대학 정시입학자 비율을 알면 뻔히 나온다. 각 지역 의대 입학자에게 물어보라. 정시 수능 점수로 의대 입학한 학생 중 현역은 몇이나 되는지. 아마 한 자릿수일 것이고, 한 명 아니면 두 명일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른바 N수생들. 요즘은 수시 모집에서도 의대 최저 컷이 높아서 재학생이 뚫기 어려워지고 있다. 고교 3년 동안 내신 준비해서 졸업 후 수능 최저 컷을 맞추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니 누가 수능을 잘 보겠는가? 공교육으로 가능하다? 극소수의 신화일 뿐이다.
얼마 전 학교에 방문한 상위권 대학 입학사정관과 면담할 기회가 있어서 물었다. 정시 수능 재학생 입학자 얼마나 되는지. 의치약한수 계열이 아니어도 N수생 비율은 70%. 현역이 반수한다고 이탈하면 상위권 대학의 N수생 비율은 70%를 훨씬 웃돈다. 그래도 30% 가까이는 현역이지 않느냐고 누군가 반문할지 모르겠다. 수시와 정시 30%를 합하면 현역이 그나마 유지되는 거 아니냐고. 고교 교육에 충실하면 30% 정도는 상위권에 입학하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30%는 누굴까? 서울의 상위권 7개 대학의 정시 입학 정원은 대략 7000여 명 정도. 여기에 30%라면 2천 명을 조금 넘는다. 한해 수능을 40만 명 본다고 가정할 때, 상위 0.5% 안에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수시 합격자를 고려하고 지역에 있는 의치약한수를 고려해도 상위 1% 안에는 들어가야 하지 않나? 이게 쉬운 일인가? 이들은 누굴까? 이들은 고교 입학 후 1학년 3월 모의고사 때부터 국영수탐 1등급을 가뿐히 찍는 친구들.
이 친구들이 선행을 하지 않았다? 그건 완전히 거짓말이다. 사교육이든, 스스로 선행을 했든 애초에 이런 등급은 학교 공부로는 불가하다. 왜? 난이도 높은 문제를 중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걸 푸나? 문제 하나만 보라. 2020년 고교 1학년 3월 모의고사 문항이다. 일단 지문은 없이 문제만 한 번 잠시 감상해보라.
이게 1학년 3월 국어 모의고사 수준이다. ebs에서 게재한 국어 평균은 57점. 그나마 이건 나은 편이다. 2021년에는 50점, 2022년에는 48점. 이건 해가 갈수록 학생들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가? 나는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을 판단하는 데에 유보적이다. 무엇으로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19세기말 문헌을 가져다 놓고 측정해봐라. 당연히 문해력이 낮지. 10대들이 자주 읽는 글로 측정해보라. 그럼 아마 어른들의 문해력이 훨씬 떨어질 거다. 문해력을 가장 많이 이슈화시키는 ebs. 이곳에서 만드는 ebs 수능 국어 난이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얼마 전에는 일반화학 대학원 교재까지 다시 써서 붙여놓기까지 했다. 일부러 문해력을 떨어뜨리는 전략일까?
말이 샜다. 위의 2020년 1학년 국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비자잉여, 생산자잉여, 사회적잉여는 물론이고 관세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 관세가 사회적잉여를 감소시킨다는 점 등을 알면 쉽게 읽는다. 알면 그냥 푼다. 그런데 그걸 모르면 어떨까? 잘 안 읽힌다. 그래도 읽어야지. 뇌를 악착같이 써서 풀어본다. 하지만 문제도 틀리고, 전두엽은 오그라들고, 편도체는 부풀어서 다음 시간 수학까지 망친다.
나는 서울시 교육청이 가장 싫다. 중3을 갓 졸업한 대다수 아이들에게 상처와 좌절감을 입학선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이 내리 당선된 곳에서 10대 초반 아이들을 잡들이 하다니. 해도 안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심어주다니.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
여하튼 자, 위 문제, 선행과 사교육 없이 해결하겠나? 중학교 갓 졸업한 학생들 이거 손댈 수 있을까? 중학교에서 이런 문제를 풀어는 봤을까? 그러니 순진한 사람만 호구된다. 유명인이 나와서 선행은 필요 없다, 사교육은 필요 없다고 떠들어대는 말을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 말이다. 나처럼.
나는 사교육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하지 않으면 어쩔? 그냥 애를 계속 좌절하게 냅둬? 그러다 게임이나 인터넷에 중독된 채 왜곡된 보상체계 속에서 도파민에 허우적거리게? 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인터넷 게임 중독 그거, 어쩌면 평가가 문제다. 평가가 좌절을 안겨주니 손쉬운 데에서 만족을 찾는 거지. 자, 이게 바로 내가 한시적 사교육주의자가 된 이유다. 학교 교육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걸 믿는 바보가 있다면 제발 꿈 좀 깨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