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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Aug 08. 2018

평소와는 조금 다른 아침

그렇구나. 돌아가셨구나. 아.

일어나니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어젯밤 미처 끄지 못하고 잠든 라디오 때문. 오늘 아침은 전처럼은 아니지만 여전히 더울 거란다. 광고가 끝나고 다른 프로그램이 시작할 즈음에는 꼭 일어나야 한다. 이불을 개고 베개에 살균 방향 스프레이를 뿌린다. 땀 먹은 만큼 방향살균제를 머금어주길. 기분만이라도 덜 찜찜하게. 요플레를 먹고 가벼운 화장을 한다. 옷을 입고 나서야 블라인드를 올린다. 어제보단 해가 덜하다.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도 부는 듯하군. 어제가 입추라더니.
 황급히 엘레베이터를 타고 거울을 본다. 이어폰을 꼽고 오늘의 모닝송을 선곡, 해를 정면으로 맞으며 회사로 향한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SNS를 확인하는 건 내 버릇. 피드를 내리다 멈칫, 멈추어선다. 이때부터 오늘은 다른 날과 조금 달라지고 말았다. 평소 흠모하며 팔로우하던 문인들의 계정에 슬픔이 넘쳐났다. 황현산 선생님, 편히 쉬세요. 사랑해요. 그렇구나. 돌아가셨구나. 아.
 여덟시 반즈음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곧 실시간 검색어에 황현산이라는 이름이 오르고, 그의 행보를 기리는 글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젊은 문인들의 글을 길어올리고 문학의 의미를 끝없이 탐구하였을 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으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은 이 시대의 어른. 이상하다. 네시 반 즈음 돌아가셨다는데, 소식은 정확히 출근에 맞추어 전해지네. 사실 이상한 건 애도의 시각이 아니라 애도해야 하는 상황 그 자체였다. 황현산 선생님이 투병 중이시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왠지 담담히 일어나실 것만 같았는데. 조금 더 쓰고 말해주실 것만 같았는데. 이상하다. 나는 왜 이렇게 슬픈 거지. 딱히 이렇다할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런 분이었기 때문이겠지. 얼마 전 친구가 무사히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고맙다고 말해버린 것과 같이. 친구가 아니지만 내 멋대로 친애하는 마음을 품어버렸나보다. 그랬나보다. 황현산 선생님 같은 분이 계속해서 배우고 말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니, 사랑이든 문학이든 인간이든 그 무엇이든 믿을수록 나날이 비참해지는 현실이지만 선생님의 말과 글 그만큼만이라도 안전하다는 믿음. 그런 걸 품을 수 있었다. 비록 몇 권의 책과 몇 번의 강의만으로 이어진 믿음이라 해도. 우리 사회는 그만큼 어른이 부족하니까.
 자꾸 좋은 사람들이 가버린다. 다른 맥락의 죽음들이건만 계속된다는 점 하나만으로 어렵게 쌓은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감각을 뭉그러뜨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아파한 만큼 빨리 가버리는 것만 같다. 황망하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어떤 마음으로 애도를 해야할지 몰라 오전 내 끄적이다 말았다. 그리고 함께 애도하는 사람들의 글로 다시 위로받는다. 단지 글만으로 이어진 사람들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고 직접 만난 문인들은 그저 사랑한다고 되뇌었다. 그저 사랑받으며 가셨다. 평생 문학의 쓸모나 의미를 묻고 답해온 삶의 자리엔 사랑이 남았나. 아닌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나. 그저 살 만큼 살았고 때 되어 갔는데 남은 이들이 자꾸 저들끼리 아파하고 사랑하나. 그런 거라도 좋겠다. 아무렴 좋구나,하고 가실 수 있겠다. 부디 그러셨으면 좋겠다. 선생님, 어른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 부디.


"찌질한 것을 포함해낼 수 있는 거, 찌질한 것을 하나라도 더 포함할 수 있는 어떤 말들의 체계, 이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칼럼 같은 데에서 주장했지만, 간혹 ‘누가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겠느냐’라든가 ‘그건 네 사정이고’라고 말하는 경우를 들을 수 있는데, 사람이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죠. 그리고 그 사정은 실제로는 한 사람의 사정이 아닙니다. 그건 모든 사람의 사정인데 대부분은 그것을 눌러놓고 있는 거예요. 그 부분들이 살아날 수 있는, 그것을 포함하고 그것들을 감당해낼 수 있는 말의 체계와 사상의 체계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자료를 문학이 만들었지요. 그 일을 하는 것의 최초의 이름을 문학이라고 지었기 때문에 문학은 계속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지닷컴, '힘센 말은 어디에서 오는가', http://moonji.com/40years/1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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