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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Aug 02. 2018

쓸데없어지는 연습

주5일 쓰기 스터디를 시작하다

"연연은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연습이 필요해."
맞은 편에 앉은 팀장님이 말했다. 움찔했다. 정곡을 찔렸구나, 이런 게 바로 관록인가.


나는 과묵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선천적으로 감정의 편차가 크지 않은 탓도 크지만, 아마도 내 얘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리고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간이 쌓일수록 더 어려워져서 나날이 과묵해졌다. 내 얘기라는 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지라 가족 얘기를 해야 하고, 그러면 썩 유쾌하지 않은 데다가 해봤자 딱히 해결법은 없으며 직접적인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얘기하기 어려우니 안 하고 말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점점 표현에 어색해졌다.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말하면서 길을 잃느니 (더 부정적으로는 패를 잃는다고도 생각했다. 남이 나의 패를 알게 되는, 그런 게임.) 말하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편이 낫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팀장님은 쓸데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요는 이랬다. 쓸데없는 대화를 하면서 대화의 벽을 없애 놓아야 진짜 하고 싶은 (그러나 대개는 말하기 어려운) 말을 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어쩐지... 이제까지 놓친 대화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최근에도 그랬다. 회사에 화가 나서 동기 언니들에게 처음으로 먼저 SOS를 쳤다. 야근으로 인한 저녁 식사 외에는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 정말 쓸데없는 대화는커녕 만남도 하지 않는구나.) 내가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설명하고 나서 힘든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는데, 결국 상황만 설명하고 마음은 털어놓지 못했다. 오히려 같이 모인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끝났다. (아, 물론 전반적으로는 회사욕이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미처 털어놓지 못한 속상함에 짓이겨진 마음을 보았다. 이러지 말자고 모인 자리였는데, 결국 또 머뭇대다 끝나고 말았다. 내 얘기하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니! 일과는 또다른 아득한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택하고 말았다.


그런데 훈련의 계기가 생겼다. 글쓰기 스터디. 제형과 학곰이 일주일에 5일 근무하듯, 주 5일 짧은 글을 쓰자고 했다. 마침 인생에 이벤트가 필요하던 참이라 덥썩, 물어버렸다. 각자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중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제형이 나에게 인용 없는 글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 직구였다. 내 얘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대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한담, 고민하다가 팀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쓸데없는 대화. 그래.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말실수처럼 묵직한 무엇이 튀어나오겠지. 진심이 배어나오겠지. 나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풀어놓고 말겠지. 그래서 앞으로 여기에 쓸데없는 자잘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적어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겠지...? 그러니 조금은 길을 잃어봐야겠다. 앨리스는 되지 못하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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