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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Sep 22. 2020

가을 가을 한 날이라 했더니, 추분(秋分)이었네

가을꽃의 향연

  시리도록 파랗게 높은 하늘에는  몽실몽실 하얀 구름이 유유히 여유롭게 떠 다닌다. 햇살을 가득 품은 바람은 모든 고뇌를 날려줄 듯이 폐부로 스며든다. 시원하다.  세상이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다.

  공원 산책길에는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벼 외딴 산책길로 나섰다.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 가끔 마스크도 내릴 수 있고. 대낮의 강렬한 햇빛에 빨리 걸으면 아직도 콧등에 이마에 땀이 흐른다. 마스크가 거추장스럽다.

  들꽃과 들풀은 하늘하늘 반갑게 인사한다. 사람들은 코로나로 엄청난 불편과 곤혹을 치르고 있는 중이지만 계절은 자연은  어김없이 자신들의 순리대로  어김없이 흘러간다.

  캠퍼스 건물로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도 새파랗던 잎들이 조금씩 색깔이 변해간다. 혼자서는 꼿꼿하게 설 수 없어 기둥으로 될만한 나무나 바위, 건물벽을 만나면 줄기차게 타고 올라가 영역을 펼치는 강인한 생명력이 엿보인다. 가을이 깊어가면 빨갛게 물들어져 운치가 더 할 예정이다.

  대학 캠퍼스 건물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


  둔덕이 있는 산책길로 들어서니 야생화들이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며 나부낀다. 여태까지 꽃피우는 늦깎이 하얀색 무궁화, 분홍색 무궁화보다 청초하고 정갈하게 느껴진다. 이 땅의 백의민족과 너무 매칭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람이 너무 서늘했나 오돌오돌 유난히 추워하는 것만 같은.

흰색 무궁화

  쉽게 눈에 띄고 흔한 백일홍, 색깔도 다양하고 정감이 가는 꽃이다. 꽃말이 행복, 인연이라는 것에 왠지 더 친절하게 보이는. 꾸밈없이 진한 꽃물이 단정하고 정직해 보인다.

                             백일홍

  이름 모를 야생화, 꽃의 무늬가 독특하다. 작은 잎새에 색깔이 교차하며 보기 좋게 교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멋들어진 화합을 보는 것 같아 기분 좋다.

                 이름 모를 야생화

  가뭄에 콩 나듯 피어있는 꽃무릇(석산화),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라는 꽃말, 그래서 일명 상사화라고도 하는지도 모를 일.

                            꽃무릇

  정 좋게 나란히 피어있는 장미, 5월의 장미가 아닌 9월의 장미여도 꽃 중의 퀸답게 화려함은 으뜸이다.

                       9월의 장미

  낮게 날아다니며 주변을 맴맴 도는 고추잠자리, 볕 쪼임이 좋은가 보다. 풀숲 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귀뚜라미가 제일 신나게 짖는다. 제비들은 뭘 그리 열심히 좋아 먹는 건지 포르릉포르릉 나무 위에 앉았다가 풀숲에 앉았다가 열심이다.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길게 뾰족하게 뒤로 뻗친 제비초리가 뒤뚱뒤뚱한다.

  문득 눈에 띄는 아기 배롱나무들. 무더기로 꽤 있었네. 신도시인지라 한적한 외곽에는 묘목들이 많다. 신도시의 가로수 조경수들은 도시의 나이랑 맞게 너무 어려서 왜소하다. 대로변을 걸을 때면 그늘이 없다. 빌딩만 숲을 이루고. "나무를 기르는 데는 십 년이 필요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는 백 년이 필요하다"(十年树木 百年树人)는 말이 떠오른다. 인재육성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원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기나무는 음영이 없다.  묘목들이 자라나 그늘을 만들고 사람들을 시원하게 햇빛으로 가려주려면 10년의 세월이 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하루아침에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거쳐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아기 배롱나무

   절기로 추분이라니 국황게비(菊黄蟹肥 국화는 노랗고 꽃게는 살찐다), 천고마비(天高马肥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라는 말들이 있듯이 가을은 모든 게 풍성한 계절이다. 추분부터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진다.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들은 땅으로 숨는다고 한다. 하루하루 날씨가 차가워지며 만추를 가로질러 겨울을 향해 질주한다. 깊어가는 가을, 초록이는 지쳐서 단풍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여름 내내 더위와 비바람에 지치기도 할 만하지. 비움의 미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비워내고 내려놓고 다음 해 봄에 또 연록으로 세상을 물들이며 환생을 하는. 자기 분수껏 향유하는 절제의 미.

   흔히들 가을을 사색의 계절, 남자계절이라고도 한다. 친구들은 다들 봄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열매 맺고 수확하는 계절이라 좋다. 빨갛게 물든 단풍이 좋다.

  진한 꽃향기에 나비들도 날아든다.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백일홍에 내려앉았다. 나무 숲이 우거진 강가로 나오니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찌르르르하며 목청껏 합창한다. 날씨가 조금만 더 차가워지면 아예 자취를 감춰버릴 매미들. 다 활동하는 시기가 주어졌으니.

  갑자기 발채로 도토리 한알이 톡 하고 떨어진다. 숲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도토리, 산사(아구아)들이 꽤 많이 떨어져 있다. 앙증맞게 귀여워서 몇 개를 주워왔다. 결국 가을을 집으로 모셔온 셈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음악을 틀었다.  피아노곡의 정수라고 할만한 "가을의 속삭임"(리처드 클래이드만 피아노 연주곡), 가을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그대로 묻어나는듯하고 삭막한 아스팔트를 뒹구는 낙엽들이 연상된다.

  가을 가을 한 꽃들을 혼자 독점해서는 안되고 좋은 건 공유하는 게 동아리 단톡 방의 취지인지라 투척한다. 금방 포토, 글들이 올라온다.

  항저우(杭州) 연이의 오래된 국화꽃 농사, 익어가는 가을의 대표 꽃 국화를 연이는 자신의 뜰안에 갖가지 색깔별로 많이 심었다. 해마다 작황이 다른데 올해는 상태가 별로라며 시큰둥하다. 꽃심(花心)들이 대단한 동아리 톡방의 친구들, 다들 사랑의 소망을 꽃망울로 터뜨리는 꽃나무들의 떨림을 느끼며 삶을 찬미하길 즐긴다. 센스 있고 멋진 친구들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항저우 연이네의 국화


  연이의 국화 사진에 당나라 원진(元稹)의 국화 시가 떠오른다.

秋叢繞舍似陶家(추총요사사도가),

遍繞籬邊日漸斜(편요리 변 일점사)。

不是花中偏愛菊(불시화 중편 애국),

此花開盡更無花(차 화개 진갱 무화)。

 무성한 국화가 집을 둘러싸니 도연명의 집 같아

둘러싸인 울타리 가를 돌다 보니 해가 차츰 기우네.

꽃 중에서 국화만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이 꽃이 다 피고 나면 다시 필 꽃이 없어서라네.


   일 년 중에 국화가 마지막으로 꽃 피우는 셈이네. 그래서 국화는 분위기가 쓸쓸하고 애잔한가 보다. 마지막을 장식해서.

   베이징의 홍이는 코스모스를 사랑한다. 사람마다 꽃사랑은 다양하니 저 다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사랑도 제각각.

              베이징 홍이의 코스모스


  추분 날에 가을꽃들이 저마다의 향기와 예쁜 자태를 뽐내며 우리들의 마음을 홀린다. 꽃의 향연에 사람이 취하네. 잠시나마 뭣에라도 취할 수 있음에 감사할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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