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흉터는 세배가 된다

by young


반차를 냈다. 다분히 충동적인 반차였다. 지난주 내내 나는 나를 혹사시키느라 충분히 쉬지 못했고, 일도 바쁘지 않으니 그냥 오후 반차를 써버렸다. 오전 미팅에 집중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 보자고 손을 흔들었다.


반차를 쓰고 회사를 나섰다. 병원을 가야겠다. 주변의 가까운 외과를 검색하고, 한쪽 종아리의 섬유종을 제거했다.


삼 년.

깨알보다 작았던 섬유종이 새끼손톱만큼 커지는 데 걸린 시간.


"안타깝게도 흉터는 이 동그란 부분의 세배정도 크기가 될 거예요."


의사는 하얀 종이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 동그란 부분만 똑, 떼어내면 좋겠지만 그러면 아물고 나면 살이 볼록하게 튀어나오거든요. 일자로 평평하게 아물려면 위, 아래로 동그란 부분만큼 더 절개해야 해요."

"아...."

"그러니까, 흉터는 지금 까만 부분의 세배 정도 크기예요."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의사는 지긋이 나를 바라봤다. "계속 커질까요?" 하는 물음에 그는 "그렇다."라고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섬유종과 헤어지지 않으면 나중엔 더 큰 흉터가 남는다.

마취는 너무 아팠고, 그 후엔 짤각거리는 소리, 살이 당겨지는 감각이 지나갔다.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내 몸의 일부였던 섬유종과 완전히 이별했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섬유종에서는 퀴퀴한 피냄새와 살냄새가 뒤엉켜 풍겼다.






마취가 풀린 자리에는 쓰리고 가려운 통증이 남았다. 주변에서는 '참아.', '원래 그래.' 따위의 위로를 건넸다.

긁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누르고 글을 쓴다.


우리 삶의 문제들, 관계의 균열들도 이처럼 서서히 자라나는 건 아닐까? 언제부터 감정이 커지기 시작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크기가 되었는지. 어쩌면 모든 이별에는 적절한 때가 있나 보다.

너무 큰 흉터가 남기 전에 끝맺었어야 했나 싶다가도, 끝맺지 않았다면 흉터가 남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든다.


아니, 어쩌면 흉터를 달고 살아가는 것이 필연일지도 모른다.


이별 없는 관계가 어디 있으랴.

흉터 없는 헤어짐이 어디 있으랴.






헤어질 결심, 을지로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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