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과 무기력함의 경계가 이렇게 모호할 줄이야
병원에 다시 가기 전의 일이다.
내가 아직 병식이 없고, 가족들이 내 걱정을 하던 때의 일. 아니, 병식이 정말로 없지는 않았다. 그저 두려움에 스스로 나아지길 기대했을 뿐.
"고민이 있는 얼굴인데."
엄마는 어려운 말을 꺼낼 때면 어울리지 않는 능청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원래도 높은 당신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더 높아지며 간지럽지 않은 웃음기가 얼굴에 서린다.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를 보지 않은 채 나는 대답했다.
"없어. 고민."
"말해봐. 고민 있잖아."
"없다고! 나한테 아무것도 물어보지 좀 마!"
"참나! 물어보지도 못하니?"
우리는 서로에게 소리를 질렀다.
마음속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나도 안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를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즈음 나는 감정기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시간들이 늘어난다고 해야 할까. 스물여섯쯤. 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조금 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우울에 불안이 올라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출근길엔 죽고 싶다가 일을 시작하면 살고 싶다가 점심때는 죽고 싶다가 점심을 먹으면선 살고 싶었다. 오후엔 다시 죽고 싶었고 퇴근길엔 또 살고 싶었다. 내가 겪은 기복 중 최악이었다.
불안은 불편한 구원자였다.
우울에 잠겨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나를 불안이 건져 올리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제발. 제발 날 좀 혼자 내버려 둬.
-아니. 날 혼자 내버려 두지 마.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가라앉고 싶어.
-누구든 날 좀 건져주세요. 살려줘.
-아무것도 못하겠어.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야.
-할 수 있어. 뭐든 일단 해야만 해.
병원에 다닌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기복이 줄어들고 불안이 앉을 공간이 사라졌다. 우울이 아직 넓게 내 마음을 침대 삼아 뻔뻔하게 누워있긴 하지만. 불안은 언제 내 옆에 있었냐는 듯 인사를 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불안이 사라져서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니. 절대 아니다! 불안씨가 없으니 나는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다. 고통스럽기만 한 줄 알았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니, 이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불편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건강한 불안조차 사라진 내게는 무기력함만 남았다. 고통 없는 삶이 이렇게 밋밋할 줄이야.
'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불안이 사라지고 나니, '하고 싶다'는 욕망도 사라졌다.
무기력한 평온함.
살아있다는 감각이 희미해지는 느낌.
불안씨, 가끔은 제게 찾아와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