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명령어로는 쓸 수 없는 것들

진짜 내 작품이 사랑받는다는 것

by young
"요즘 웹소설이 돈이 된다던데?"


친구가 가볍게 툭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래? 하지만 나는 소설은 써 본 적이 없어서."라고 대충 받아치고는 커피를 마셨다. 친구의 입에서 꽤 구미 당기는 제안이 흘러나왔다.


"요즘 GPT가 다 써 주잖아. 캐릭터 설정도, 플롯 잡는 것도, 심지어 장편도 쓸 수 있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AI가 쓴 글이 재미없을 수 없겠지. 그때만 해도 몰랐다. 내가 곧 '저작권'의 진짜 의미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줄은.

그날 저녁, 노트북을 열고 인기 있는 웹소설의 제목과 설명을 훑었다. 적당한 주제를 잡고, GPT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내가 GPT에게 내린 지침은 간단했다.


<사용자를 대신해서 양산형 로맨스 웹소설을 작성하세요.>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을 24화까지 연재했다. 신기하게도 독자들은 GPT가 쓴 <양산형 로맨스 웹소설>을 꽤 재미있게 읽었다. 어떤 독자는 유료분까지 결제해서 읽고 댓글을 달았다. ‘너무 재밌다.’는 그의 댓글을 보고 나는 한참이나 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쓴 글'이 아닌 것을 사랑하는 독자를 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단 한 줄의 지침으로 만들어진 '가짜 창작'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 맞을까?

공지를 올리고, 연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와중에도 독자는 '작가님 꼭 돌아오세요!'라는 응원의 댓글을 남겨 주었다.


작가? 내가?


내가 쓴 것이라곤 단 한 줄의 지침과 몇 번의 명령어뿐인데, 나 같은 사람을 '작가'라고 칭해 주다니. 나는 지금껏 내가 해 온 행위가 그 글을 사랑해 준 사람들에 대한 '기만'임을 깨달았다. 내 생각과 철학 따위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저 공허한 활자를 업로드한 나날들을 떠올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한 짓이 부끄러웠다. 독자의 응원에 나는 답글도 달지 않은 채 작품을 삭제했다. 애초에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으니,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AI가 쓴 글의 저작권은 누구 것일까? 내가 명령어를 입력했으니 내 것? 아니면 AI 회사 것?

애초에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 아닌 이것을 저작물이라고 할 수나 있나?


회의시간, 몰래 다이어리에 끄적거렸던 것들

그즈음, 우울한 일들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쓰고 싶은 글이 생겼다. 한 명의 독자가 내게 남겼던 댓글이 떠올랐다. 늘 수필을 썼지만 처음으로 '내 소설'을 써 보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줄거리를 고민하고, 캐릭터들의 서사를 설계했다. 고작 하나의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했다. 이름도 생소한 애니어그램을 열심히 정독하고, 심리학 서적을 뒤적여 트라우마와 방어기제에 대해 알아갔다.



아무도 안 좋아할 것 같은데?



너무 우울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에, 나는 '내 소설'이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지친 일상의 마무리로 웹소설을 읽으며 감정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까. 그래도 이왕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으니, 나는 용기를 내서 '작품'을 업로드했다. 아,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이 이야기는 인기가 없었다. 씁쓸했지만, 나는 나의 '진짜 창작'이 마음에 들었다. 내 생각과 내 철학,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담긴 이야기가 나는 좋았다.


조용히 '좋아요'를 눌러 주는 독자가 있었다. 그는 댓글을 달지 않았지만, 늘 새 회차가 올라오면 하나의 '좋아요'와 함께 내 이야기를 따라왔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가 좋은 사람도 있나 보다.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새벽에 잠깐 깨어버린 날이었다. 다시 잠들기 어려워, 나는 그 독자가 또 '좋아요'를 눌렀을까 궁금해 연재 사이트에 들어갔다. 빨간 종을 눌러보니, 알림이 9개나 와 있었다. 그는 이번에 올라온 회차를 보고는 ‘프롤로그’부터 다시 정주행을 했다며, 인상적인 회차마다 댓글을 달아주었다.


아! 그의 솔직한 감상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창작'의 기쁨을 느꼈다. 누군가가 내 작품을 온전히 사랑해 주는 것이 이토록 가슴 벅찬 일이라니! 내가 그 작품에 담은 생각과 철학, 그것에 쏟은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댓글에 답글을 다는 것은 부끄러워 그저 독자의 댓글에 '좋아요'만 눌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새벽인데도 잠이 확 달아났다. 그의 댓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았다.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 독자는 새 회차마다 댓글을 달아 준다. 50화가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어느 날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직접 쓴 소설을 누군가 보고 "이것도 AI 작품이네"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이 글조차도 AI가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진짜 사람이 쓴 글과 AI가 쓴 글을 구별할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진짜 창작권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저작권은 거창한 법적 용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법적 권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결국에는 창작자와 독자를 잇는 다리가 아닐까?

그것은 창작자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순간, 그 감동의 순간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나의 사유가 듬뿍 들어간 나의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사랑받고, 또 다른 작품을 이어 나가고.


AI 시대에 명령어 몇 줄로 글이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글을 쓰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인간만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해진 것이 있다. 진짜 인간이 쓴 진짜 이야기를 보호하는 것.


AI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진짜 사람이 쓴 진짜 이야기를 구별하고 보호하는 것이 저작권의 새로운 역할이 될 것이다. 저작권은 이제 단순히 복제를 금지하는 것을 넘어서, '진짜 창작자'임을 증명하고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 내 소설에 댓글을 달아주는 그 독자와 나 사이의 진정한 교감, 그것이야말로 AI로는 복제할 수 없는 창작의 진짜 가치이자, 보호받아야 할 저작권의 핵심이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날 밤, 모든 상담사는 통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