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의 일상 이야기
대학생 시절에 정말 싫어했던 노래가 있다.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 가요~”하는 저주에 가까운 노래였다. 그 노래가 나를 향할 때의 시간은 저주 그 자체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엉망인 노래 실력을 들통나게 생겼으니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노래뿐만이 아니다. 발표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는 실력을 평가받을만한 것들을 할 때면 손이 떨린다. 가슴은 요동친다. 자신 있었던 일도 남들의 시선이 집중되면 자신감이 없어진다. “잘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해진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무서워하는 것은 소심한 성격을 고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사람들 앞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쭈뼛대는 모습이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노래 하나, 발표 한 번에 왜 그토록 가슴 졸이고 긴장해야 하는지.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허망함을 느낀다. 축구 선수가 6만 명이 넘는 관중들 앞에서 페널티킥을 찰 때 느낄 말한 중압감을 나는 열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의 앞에 섰다는 이유로 느끼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재미있는 농담이 떠올랐는데 웃길 자신이 없어 뱉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큼 자신을 바보 같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왜 그렇게 깔린 멍석에선 한 없이 작아져야 했을까?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이 열등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력에 자신이 없고, 늘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내면의 자아가 긴장감을 유발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감을 키우려고 노력해왔다. ‘자신감을 부르는 주문’에서도 얘기했듯이 ‘잘할 수 있다’고 매일 외쳤다. 자기 계발서도 읽어보고 명상도 해봤다. 그러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꼭 나를 보여주기가 무섭다고 해서 자신감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감이 부족할 때면 ‘잘할 수 있다.’는 허세의 주문이 통한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자만해서 보여주기가 꺼려질 때가 있다. 나는 너무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혹여나 실수해서, 혹여나 사람들이 잘못 판단해서 내 실력을 과소평가받을까 봐 두려움을 느낄 때다.
미국의 사회학자 미드는 인간의 자아는 “I”와 “Me”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I”는 오롯한 나다. “Me”는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 생겨난 나다. 원초적인 나의 모습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나의 모습이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현재의 나를 유지하고 있다. 나에 대한 평가 또한 자아와 같은 구성을 가진다. 내가 평가하는 나와 타인으로부터 받은 나의 평가가 합쳐져 자신의 실력에 대해 인지한다. 자신감이 없다가도 타인에게 칭찬받으면 ‘내가 잘하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잘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으로 자신 없던 일에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내린 평가가 높은 상태에서 타인에게 평가를 받을 때는 자신감을 키우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한 후에 치르는 시험이 공부를 안 하고 치는 시험보다 더 긴장된다. 열심히 한만큼 잘할 수 있는데 혹여나 실력 발휘를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잘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실수에 대한 걱정보다는 원천적인 실력이 부족함이 걱정될 때는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위로보다는 '잘할 수 있다'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타인 앞에 서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때면 자만심 때문인지 열등감 때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열등감과 자만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같은 100원짜리라도 앞뒤가 다르듯 같은 두려움도 다른 이유 때문일 수 있다. 이유가 다르니 문제를 푸는 해법도 다를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해야만 자신감을 돋워야 할지, 자만심을 버려야 할지 선택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지 ‘실수해도 괜찮아.’는 위로를 줄지 결정하는 것이다. 동면의 양면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값어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동전이 앞뒤를 선택하는 동전 던지기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가 같은 두려움에도 양면성이 있음을 알고 알맞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이다. 같은 값어치의 동전으로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