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의 사랑 이야기
“내 어디가 좋아?”
“저기 가서 나 사랑한다고 세 번 외치고 와”
“나 얼마큼 사랑해?”
“그래서 나 싫어?”
옆에서 듣게 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들이지만,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 때면 한 번쯤 해보았을 말이다. 사랑은 소중한 감정이다. 사랑의 대상인 상대도 소중하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기 싫어하고 그래서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상대도 나를 사랑하는지, 마음이 변하진 않았는지 매 순간 궁금하다.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걱정도 커진다. 정말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점점 줄어가는 음식을 보며 아쉬움을 느낀다. 그런데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른다면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제대로 먹지도 못할 것이다.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하니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니 내가 계속 마음을 주어도 되는지 걱정하는 것도 같은 마음일 테다.
이별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런 걱정은 더 커진다. 상대를 믿고 마음을 열었고, 마음을 주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누구의 잘못으로 이별을 맞이했든, 누가 먼저 이별을 고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별의 순간 그간 쌓아왔던 사랑의 감정들이 이제는 눈처럼 녹아 가슴 밑바닥의 모래와 얽혀 온 마음을 더럽힌다. 그럼 우리는 열심히 빗자루를 들고 한 구석으로 밀어내고, 여유가 생기면 조금씩 덜어낸다. 그렇게 이별의 아픔을 견딘다. 그 힘들었던 이별의 시간을 또 맞이하기가 무서워 다시 마음을 열고, 마음을 주고, 사랑을 쌓아가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그전에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 상대가 쌓은 만큼만 나도 쌓고 싶다. 혼자만 높이 쌓아놨던 눈의 양을 감당하는 것은 비참하다.
소심한 사람일수록 그런 걱정은 더욱 크다. 자신에 비해 상대는 훨씬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해 줄까라는 걱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조급해지고, 불안하다. 상대의 마음이 늘 궁금하다. 확인하고 싶고 확인하려 행동한다. 어느새 상대는 지쳐간다. 상대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차곡히 사랑을 쌓아가고 있는데 늘 모자라 하는 나를 보며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막막함을 느낀다. 이자를 독촉하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것 같을 것이다. 열심히 이자를 갚아왔는데 이자의 이자를 갚아야 될 처지에 놓였다. 그렇게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크기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렇게 지친 상대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역시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상대도 나를 사랑해왔다. 충분히 나를 사랑했고 넘치도록 사랑했다. 단지 나의 자격지심 때문에 상대를 의심한 것이 문제가 됐을 뿐이다. 결국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느라 상대를 지치게 했고 사랑을 종결시켰다. 차라리 사랑을 확인하려는 노력으로 나를 더 좋은, 사랑받을만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가꾸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러는 편이 조바심 내며 상대가 날 좋아해 주길 기대하는 것보다 사랑을 지켜낼 확률이 높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여지도 더 많다. 이별의 후에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다음번의 사랑 땐 더 괜찮은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도 생긴다. 그래서 눈이 쌓여간다고 마냥 바라볼 것이 아니라 대비를 해야 한다. 눈이 쌓여도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고, 함께 눈을 맞을 나무도 심어야 한다. 좋은 제설장비도 갖추면 좋다. 그래야 사랑이 깊게 쌓여가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별을 맞이해도 그간의 노력들로 사랑에 휩쓸렸던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걱정하는 만큼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사랑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