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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Feb 25. 2020

가족에게만 무뚝뚝한 이유...

소심이의 가족 이야기

 나는 무뚝뚝한 아들이다. 가족들에게 밖에서의 일들을 주저리 읊어대는 일도 없고, 감정을 드러내는 얘기도 잘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는 다정한 편에 가까운데도 가족에게는 이상하리만치 무뚝뚝하다. 책을 가려 읽는 편은 아니지만 ‘대화’에 관한 책은 꼭 주기적으로 찾아서 읽는 편이다. 애쓰지 않으면 무뚝뚝한 성격이 계속 성장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 성장을 막고 가족들과 다정한 말투로 살가운 말 한마디를 나누고 싶은 바람이다. 그런데 잘 되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꼭’, ‘다음번에는 꼭’하며 다짐해봐도 가족들 앞에서는 입을 떼기 싫어지고, 말이 짧아진다. 

    

 어릴 적에 누나와 참 많이 싸웠다. 이유야 여느 남매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라 이길 수 없었지만 바득바득 우기며 악으로 싸워댔다. 맞는 쪽은 나였기에 항상 분했었다. 하지만 한참 어린 동생이 대든다는 이유로 누나도 분해했다. 그래서 싸운 날이면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그런 누나와 나를 보며 부모님은 늘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누나는 다음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보다 더 친한척하며 말을 거는 모습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내가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을 때 누나를 떠올렸던 이유기도 했다. 지난 저녁까지도 나를 째려보며 지나가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 만에 저렇게 낯빛을 바꾸고 다가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나만 그런 게 아니란 걸 안다. 나도 어느 때는 누나에게,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또 아버지에게 지난날의 잘못은 없었던 일인 양 말을 걸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간 적이 많다. 그렇게 어떤 잘못에도 화해도, 사과도 없이 가족이란 관계는 가족이란 이유로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다 문득 철이 들어서였는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인지 그런 사과 없는 화해가 낯설어졌다. 가족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쉽게 감정을 씻어냈지만 내가 잘못을 했을 때는 미안하고 어색한 감정을 씻어내기가 힘들었다. 화해 없이 뻔뻔하게 다가가는 게 어려웠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기에 실망감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만큼이나 나는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기 힘들었다. 소중한만큼 가족에게 나의 못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잘못을, 실수를 거듭할수록 가족들과의 대화를 점점 줄여왔다. 어색해서, 미안해서, 뻔뻔하지 못해서 다가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다짐을 해봐도 갑작스럽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마저 민망해서 무뚝뚝함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가깝고 소중하던 관계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도 깨질 수 있다. 근데 가족은 다르다. 남들에게는 차마 하지 못할 말도, 행동도 스스럼없이 한다. 하지만 가족은 가족으로 유지된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받아준다.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 어떤 큰 잘못을 해도, 어떤 큰 실수를 해도 가족들은 항상 받아주고 위로해 주었다. 사춘기를 지나 오춘기를 겪을 나이가 되어서야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뻔뻔해지려 한다. 한 마디, 한 마디씩 다정한 대화를 천천히 쌓아가 보고자 한다. 언젠가는 철없던 시절의 뻔뻔하지만 다정했던 아들로, 동생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족에게라고 소심한 성격이 없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다. 어떠한 잘못도 받아주던 가족이 이번의 변화를 받아주지 않을 리 없다. 아마 가족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는 일일수 있다. 그저 나이기 때문에, 아들이라서 동생이라서 무뚝뚝함도, 갑작스러운 다정함도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또 가족을 믿어보려 한다. 어디서나 눈치 보며 삐죽 대며 살았다. 가족에게라도 뻔뻔한 척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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