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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Mar 06. 2020

연애에도 실력이 있나요?

소심이의 사랑 이야기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미술학원을 족히 2년은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었다. 일단 빨간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약이었다. 색감이 없으니 엉뚱한 색을 칠하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건 용두사미의 성격 때문이었다. 너무 잘해보려는 욕심에 스케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었다. 끝에는 색칠을 할 힘도 시간도 부족해서 급한 마음에 대충 마무리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재능과 장애를 떠나 좋은 그림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색칠할 시간이 부족한 것 말고도 그림을 망치는 자주 하는 실수가 하나 있었다. 붓에 물이나, 물감의 양을 너무 많이 찍어서 움직이다가 의도치 않은 곳에 물감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고수의 실력이라면 한 방울쯤 어떻게 가려볼 수 있었겠지만 부족한 실력에 옥에 티를 그대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실수가 없더라도 어지간히 엉망인 그림인데 뜬금없는 점 하나까지 찍혀있는 걸 보자면 그림을 위해 쏟은 노력이 아까워 분통이 터졌다. 물감 한 방울로 그림을 더욱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그래서 신경을 쓰는데도 실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아마도 색칠에 쏟을 에너지와 시간이 없으니 급한 마음에 한 번에 많은 양을 칠하려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색칠할 시간이 넉넉해지지 않는다면 계속 일어날 실수였다. 결국 실력이 좋아지든지 스케치에 쏟는 시간을 줄이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의도치 않게 떨어트린 물감 한 방울은 작은 실수가 아니라 노력과 전략이 부족한 내 실력이었던 것이다.          


 연애에도 실력이 있다. 인기가 많거나 많은 연애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는 죽고 못 사는 사이 인양하다가도 어느새 금방 애정이 식어 좋은 사람과의 연애를 끝내는 경우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바뀌질 않는 것도 연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오랜 연애를 위해 사랑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하고, 저번에 했던 실수가 습관처럼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그런 여러 가지 면들에서 우리는 연애의 실력을 판가름할 수 있다. 하지만 연애에도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소심이들이 연애를 어렵게 생각하게 만든다. 나 또한 늘 내가 부족하다는 자격지심 속에 연애를 즐기지 못하고 견딘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니 돌아보면 괜찮은 연애를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 연애능력에 자신이 없어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대에게 맞추어만 주는 연애가 되었고 상대도 나에게 느꼈던 매력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애정을 식혀갔다. 그러니 괜찮은 연애였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은 연애의 실력은 존재하지만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연애에 정답은 없기에 연애의 실력도 어떤 능력이 잘 갖추어져야 뛰어난 것인지는 명확하진 않다. 그래서 당장 떠오르는 나의 단점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연애의 실력이 존재함만 명확한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음에도 헤어지는 사람들, 자주 싸우며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들, 상대의 마음을 몰라주고 외면해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또 반대로 항상 잘 지내거나, 싸워도 금방 애정을 회복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자가 꼭 나쁜 사람이지도 않고 후자가 꼭 좋은 사람이지도 않다. 서로 간의 성격이 잘 맞지 않아도 연애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성격은 비슷하지만 자주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걸 보면 각자의 성향과 서로 간의 합을 떠나 개인의 연애 실력이 존재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만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정답이 없을 뿐이다. 그러니 소심이들도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기부터 죽어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주변에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커플이 있었다. 사실 만나지 않아도 싸웠다. 매일, 운이 좋으면 격일로 싸워댔다. 둘의 연애 초기에는 두 명이 결혼에 성공하면 무엇을 해주겠다며 내기를 걸며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쉬지 않고 싸워대는 둘의 관계가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둘은 10년의 연애 끝에 최근 결혼에 성공했다. 커플은 그때 내기를 걸었던 친구들에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따져댄다. 하지만 여전히 둘은 싸운다. 변함없이 쉬지 않고 싸워댄다. 웬만한 싸움에는 주변에서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그 커플이 아니 부부가 헤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끝내는 마지막까지 붙어 지낼 사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두 명의 연애 실력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연애의 기간이 길고, 헤어지지 않고 결혼에 성공한다고 해서 꼭 연애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사랑하고 주변에서도 아껴주는 커플이다. 둘의 실력이 부족했다면 숱한 싸움에 이미 이별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좋은 사람임을, 서로에게 사랑이 남아있음을 알았기에 둘은 다툼이 잦더라도 사랑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는 결국 지금까지도 사랑을 유지하고 있다. 각자의 바람대로 전쟁 같은 싸움들 속에서도 사랑을 지켜냈으니 둘의 연애 실력이 좋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어떤 능력이 실력에 영향을 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 명이 양보를 많이 해서, 한 명이 말을 잘해서, 한 명이 섬세하게 잘 챙겨줘서 등 끝내 사랑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여러 가지 추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우면서도 행복해하고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며 서로를 아낄 수 있었던 정확한 비법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특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연애도 그림과 같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림도 잘 그리는 사람과 못 그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왜 못 그렸는지, 왜 잘 그렸는지는 명확히 알기 힘들다. 같은 것을 보고 그려도 표현법에 따라, 그리는 도구에 따라 다양한 그림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는 그림과 나쁜 평가를 받는 그림은 나누어지기 마련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것이 잘하는 것이고 못하는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내가 괜찮은 연애를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다. 그림이든 연애든 돌아보면 급한 마음에 흘렸던 물감 한 방울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림을 망쳐놓았던 물감 한 방울은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었다. 부단한 노력에 옥에 티 같은 한 방울의 물감을 흘리지 않으려면 노력과 전략이 필요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대상을 소상히 관찰하는 노력과, 자신에게 맞는 도구와 표현방법을 찾아내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노력과 나와 상대의 일상을 잘 조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능력을 활용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는 정답이 없다. 방법은 다양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다양하다. 자신감이 부족해 자신의 단점부터 생각하는 소심이들이 기죽을 필요가 없는 이유다. 연애에 필요할 것 같지만 자신은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능력이 노력과 전략에 따라 필요 없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 상대와 상황, 시기에 따라 연애는 정답 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력해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연애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정성 들인 스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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