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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Feb 07. 2022

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지는 이유

보이차는 마시면서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보이차를 하루에 3L 가까이 마신 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숙차 생차 안 가리고 무조건 마셔댔습니다. 차맛을 제대로 모르니 제 손에 오는 차는 공부를 하듯이 가리지 않고 그냥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숙차는 숙차대로. 생차는 생차대로 솔직히 그 맛이 그 맛이더군요. 


숙차는 입에 퍼지는 밋밋한 맛이지만 순하고, 생차는 입에 남는 향이 좋았지만 쓴맛이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녹차만 오래 마셔온 제 입은 생차에 별로 점수가 주어지지 않아서 일단 마시기 편한 숙차를 집중 공략했죠. 무작정 마셔대다시피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차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마다 달리 느껴지니 차를 고를 때마다 그 차의 향미에 대해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보이차는 지금도 그렇지만 향미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아 아주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게 되었다고 보아야겠습니다. 맑은 정도의 차이, 찻물을 입 안에 담으면 다가오는 단맛과 혀로 찻물을 굴리면 쓴맛이 돌면서 목으로 넘기면 이빨 사이로 침이 나오면서 단맛이 돌아 나옵니다. 이처름 단맛과 쓴맛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차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되면서 점점 더 보이차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차를 수집하듯이 수십 편을 지나 수백 편이 모였습니다. 중국차를 마시면서 알게 된 도반들이 차를 선물하고 선배 다우들의 찻자리에 가서 얻어오고... 그러면서 숙차는 수십 종류가 넘게 모아졌습니다. 오래라고 할 것도 없이 한나절 정도만 차를 안 마시면 차에서 느끼는 단맛이 생각이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몸이 차의 성분을 필요로 한다는 그 느낌, 이런 걸 중독이라고 하나 봅니다.  


그러다 다회에서 인연을 맺어 차 멘토로 모시게 된 다우께서 나눠주시는 노차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어라~~ 녹차에 길들여져 제 입맛이 거부하던 생차의 그 쓴맛이 아닙니다. 묘하게 당기는 듯이 받아들이게 되는 쓴맛이 주는 즐거움에 생차가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선배 다우들이 나눠주신 진년차들을 통해 다양한 후발효차의 특징이 이해되면서 묵은 차의 맛도 알게 되었습니다.  

보이차는 마시는 만큼 알게 되다가 그 단계를 지나면
아는 만큼 차를 골라서 마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보이차를 알아가는 데에는 왕도가 없다고 큰 소리를 쳐도 될 만큼 많이 마셔온 결과라고 봅니다. 마시는 만큼 알게 되다가 이제는 아는 만큼 차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는 차마다 다른 그 미묘한 향미를 즐기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차나 저 차나 그 맛이 그 맛이었던 초보를 지나면,  이 차는 이런 맛, 저 차는 저런 맛으로 구분하게 되는 중등 과정선에 들게 됩니다. 그다음 단계는 차맛을 아는 만큼 차를 선택해서 마시는 고등 과정에 이르게 된다고 할까요? 좋은 차와 그렇지 않은 차를 구분하며 평가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때부터는 고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마실 차를 고르는 즐거움, 보이차를 공부하며 집중해서 마셔온 보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십, 수백 종류의 차를 갖춰놓고 오전에 마실 차와 오후에 즐길 차를 선택합니다. 날씨가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에 마시는 차는 다릅니다. 추위가 지나고 봄이 오면 또 선택의 기준이 달라지지요. 


오늘 마시고 싶은 차를 골라놓고 찻물을 끓이면서 느끼는 행복, 제가 보이차를 마시는 이유랍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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