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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우리집 밥상이다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by 김정관

다음 브런치의 작가 중에 베트남에 사는 분이 있다. 그분은 서울에 살았었는데 어렵사리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 성공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아파트는 명의만 그분이었을 뿐 실제는 은행의 지분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은행의 지분을 우리 식구들의 것으로 옮기는 삶은 너무 힘이 들었다고 했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가족들과 함께 나눌 여유도 제대로 갖지 못하는 삶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아파트 한 채를 가지게 되면 그 삶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어느 때부터 그분은 이런 삶이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는 힘 겨운 아파트를 처분하고 작은 아파트로 옮겨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계산을 잘못하는 것이라 만류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다음에 베트남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실행하였다. 우리나라보다 경쟁이 덜한 베트남에서 사는 일상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베트남 생활을 통해 그는 삶의 작은 행복이 보였고 그 여유로움에서 일상이 행복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악착같이 아끼고 모으며 살았던 때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선택으로 얻어진 지금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고 했다. 비교를 멈추었고 욕심을 거두면서 삶의 열정과 사랑, 감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글을 맺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청중들이 내가 바라는 답을 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행복을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청중들에게 다시 묻는다. 오늘 아침밥을 가족들과 함께 먹었는지요? 청중들의 나이대가 젊을수록 아침은 당연히 거르는 끼니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점심은 거의 일터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각자 일정이 다르니 늘 식구들이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일주일 내내 식구들이 식탁에 앉을 일이 없지 않은가?


부부만 살든, 자식들과 같이 살든 식구들이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자리라야 대화가 이루어진다. 간단하게 차린 밥상이라도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만 한 집에 사는 식구가 짧은 시간이라도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식구들이 대화를 나누며 산다는 의미가 된다. 이 자리만이 누구나 소소한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소확행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행복했습니까?'라는 말은 추상적이지만 '오늘 아침을 식구들과 먹었습니까?'는 아주 구체적인 질문일 수 있다. 만약에 그 대답을 '아침도 같이 먹었고 저녁도 별일이 없으니 우리집은 함께 먹을 겁니다'라고 한다면 그 집 식구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집 식구들이 우리집의 행복을 위해 각자의 시간을 나누는 여유를 가질 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강연 때의 질문으로 돌아가 다시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오늘 아침밥을 식구들과 맛있게 먹고 오셨습니까? 이 질문이 왜 이 자리에서 나오느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만 우리 사회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의 브런치 작가는 바로 이런 여유가 주는 우리집이라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았나 싶다.





아내와 함께 사는 우리집은 꼭 아침과 저녁을 같이 먹고, 주말이면 딸 내외와 손녀가 찾아와서 삼대가 함께 밥을 먹는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일까 들어보고 싶다. 식구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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