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관 Jun 20. 2022

집에서 먹는 밥은 메뉴가 없다

어떤 밥이나 어떤 차보다 어떤 자리가 중요하다

보이차를 처음 마시게 되었을 때는 무작정 내 손에 있는 차라면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보이차를 마시던 초창기에는 숙차를 주로 마셨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붉은색의 탕색도 고왔지만 순하고 독특한 향미에 빠져들었다.


2006년 무렵에는 차값도 얼마나 착한지 매주 구입을 하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그 당시는 당해 생산된 숙차는 대익이나 노동지도 한통에 십만 원도 안 되었다. 지금도 브랜드 숙차는 부담 없는 가격이니 보이차로 차생활을 시작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몇 년 전에 만난 한 스님은 홍인을 일상에서 마셨던 茶歷차력이 오랜 분이었다. 그 스님에게 그럼 지금도 인급차를 소장해서 마시고 있는지 물었다. 스님 말씀이 지금은 손에 들어오는 대로 마신다면서

"중이 음식을 가려가며 먹을 수 있나요?"

하면서 호쾌하게 너털웃음을 웃어 보였다.


보이차로 하는 차 생활은 더 좋은 차의 향미를 즐기려 하기보다 밥 먹듯이 차를 마시는 일상을 누리는 데 있다.  때가 되면 밥을 먹듯이 일상에서 목마르면 마시고 같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마신다. 때마다 먹는 밥이 된장찌개도 먹고 라면도 먹듯이 보이차도 내 손에 있는 차라면 어떤 차라도 차별하지 않고 마신다.


평범한 숙차를 마신다고 해서 그 사람의 차 생활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매일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불행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저녁이면 식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밥을 먹는 그 집 사람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수행자처럼 이겨나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며 빠듯한 살림을 아껴가며 식구들이 삼시세끼 거르지 않는 것에도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때마다 산해진미가 차려지지만 그 귀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어 쳐다보기도 싫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오히려 불행하지 않은가?   


한 편에 일억을 호가한다는 홍인을 창고 가득 쌓아두고 마셔도 그 차에 만족하지 못하면 귀하고 비싼 것이 무슨 소용일까? 흔하디 흔한 숙차를 마셔도 식구들과 가지는 차 한 잔의 자리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 더 행복하다. 재물로 貴賤귀천을 따지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일상에서 얻어지기는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안다.



15 년 이상 보이차를 마시다 보니 비싸고 귀한 차도 마셔보고 내 손에도 흔치 않은 차를 가지게 되었다. 더 좋은 향미를 가진 차로 인해 그보다 못한 차에 손이 가지지 않으니 차를 가리게 된 지금이 더 불편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만큼 값 비싼 차를 마실 수 있지만 그런 차가 내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다.


오늘 저녁에도 식구들이 모여서 정성껏 차린 밥을 먹고 차 한 잔 나누는 소확행을 누리고 있는가? 매일 식구들과 밥을 먹고 차 한 잔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구들의 일상을 굳이 소확행이라 부를 필요도 없다. 그런 일상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식구들과 먹는 밥, 차 한 잔과 함께 하는 대화의 자리를 부러워할 뿐이다.



식구들과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숙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얘기를 주고받는다.

"오늘 하루도 우리 식구들이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밥과 차를 나눌 수 있으니 참 좋구나."

이 자리에 어떤 메뉴로 저녁밥을 먹었든, 어떤 차를 마시든 그게 뭐 중요할까?



무 설 자  

매거진의 이전글 혈액형으로 나누어 본 보이차 산지별 향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