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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l 27. 2022

어떤 차를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차는 어떤 차라도 아낌없이 향미를 아끼지 않고 내어 놓는데

내가 원하는 걸 구하면 나의 에고만 강해지기 십상입니다. 반면 하느님이 원하는 걸 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조금씩, 또 조금씩 하느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걸 구하면 나의 마음을 따라가는 거고, 하느님이 원하는 걸 구하면 하느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 다시 말해 신의 속성을 닮아가게 되겠지요. 그만큼 진리에 가까워지겠지요        - 고 정진성 추기경  



우리는 차를 마시며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요? 차가 주는 향미를 잘 받아들이는 분도 있겠지만 자신이 바라는 향미가 아니라는 불만족에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쓴맛이 모자란다며 단맛이 많은 차를 타박하기도 하고, 단맛이 더 있어야 하는데 쓴맛이 부담스럽다고도 합니다. 


차를 마시며 바라는 향미에 대한 자신의 기준은 頂上級정상급이면서 차는 下品하품이면 어떤 결과를 맛보게 될까요? 자신이 마시는 차의 품질을 알아서 그에 맞는 향미를 받아들이면 불만이 없을 텐데 차만 탓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녹차를 마시며 우전차의 향미를 기억하는 사람이 중작을 마시면 만족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차라도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첫물차는 비싸서 구입할 수 없어 그 아래 茶品차 품을 마실 수밖에 없다면 바라는 기준도 낮춰야만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차도 이름난 산지의 수령이 백 년 이상, 첫물차라면 내 손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은데 포장지에 적힌 산지만 보고 차가 왜 이러하냐며 탓하면 어리석은 일이지요. 


차를 아는 만큼 받아들이고 마시다 보면 자신은 모르겠지만 차가 주는 속성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게 되겠습니다. 그만큼 차 생활이 편하게 되겠지요.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차 생활에서는 ‘아는 게 득’이 되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특히 보이차는 다양한 만큼 차의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생차와 숙차, 대지차와 고수차, 노차와 신차, 건창차와 습창차, 재배차와 야생차, 첫물차와 그 이후 채엽차, 봄차와 가을차, 소수차와 고수차 등 구분해야 할 종류를 살펴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내가 선택한 차의 정체를 아는 만큼 향미에 만족하는 차 생활이라면 마실 때마다 행복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건 욕심이라 내 손에 있는 차를 받아들이면 차 생활은 늘 만족할 수 있습니다. 차품보다 내가 바라는 기준이 낮으면 만족도는 높아질 것인데 그 반대가 되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실망하게 됩니다. 차는 내줄 수 있는 만큼 아끼지 않고 자신의 향미를 내놓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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