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아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그 누구라도 눈물 없이 읽을 수 있을까 싶다. 아내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대가로 부부 사이가 원만치 않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했고 50대 시어머니의 한풀이 같은 시집살이를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철없는 시동생이 셋을 건사하며 젖먹이 아이까지 키우다 보니 겨우 스물다섯밖에 안 되는 새댁의 일상은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장손 며느리인 아내는 명절 차례까지 아홉 번의 제사상을 차려야 했고 결혼 2년 차에 시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아 병시중을 세 해나 해야 했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분가를 감행하면서 아내는 비로소 대가족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댁에서 떨어져 따로 살다 보니 일상은 조금 편해졌었을지 몰라도 맏며느리가 해야 할 일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어 두 집살이가 더 힘들다고 토로했었다. 어떻게 벗어난 시집살이였는데 아내는 다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낫겠다면서 다시 본가로 들어가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우리가 분가를 해서 살 때 사촌 누님이 가출을 해서 찾아오셨던 적이 있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린 나이에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던 누님이셨다. 사촌이지만 나를 친동생처럼 의지하고 사셨던 누님이셨던 지라 우리집을 친정이라며 달려오셨던 것이었다.
누님도 성격이 불같은 자형과 성품이 별났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맏며느리였다. 시어머니의 모진 시집살이는 버틸 수 있었지만 자형의 잦은 손찌검에는 견딜 수 없어 그날 처음으로 집을 나왔던 것이었다. 누님에게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지옥의 야차나 다름없었을 텐데 그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을 그 집을 이틀 만에 들어가실 수밖에 없었다. 넷이나 되는 자식 때문이었다.
맏며느리라는 자리의 아내와 사촌누님에게 시댁이란 어떤 집이었을까? 지금은 그런 시집살이를 감당해 내면서 ‘우리집’이라며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때는 다 그랬지’라는 말로 그 시절을 지난 한 때의 일이라며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그립다고 하는 아내는 산 보살인 것 같다. 어떤 여건에서도 며느리의 자리를 지켰던 옛 아내들이 있어서 지난 한 세대는 가정이 유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냥 며느리가 아니라 맏며느리는 집을 지탱하는 대들보처럼 끝없는 희생과 인고로 그 자리를 지켜내야 했다
이 시대에 집이란 의미가 지난 시절과는 어떻게 다를까? 지금은 삼대가 한 집에서 사는 집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고 달랑 부부만 사는 집이 대부분이다. 대학생만 되면 대학가의 원룸으로 나가 사는 경우가 일반적인 데다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자식들은 미혼인 채로 독립해서 따로 산다. 이렇게 일찍 부모를 떠나 살다 보니 결혼을 하고 부모와 한 집에 사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부부만 살게 되면 빈방이 생겨서 그런지 모르지만 각방을 쓰는 집이 의외로 많아지고 있다. 부부가 방을 따로 쓰는 걸 서로의 생활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면 좋게 보일지 모르지만 대화가 없는 일상을 살게 되는 집이 많다. 결혼한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와도 하룻밤 묵고 가는 경우가 흔치 않으니 손주를 봐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정이 들 시간을 갖지 못한다.
일찍부터 혼자 사는데 익숙해진 젊은 부부들도 각방으로 사는 집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일찍 집을 나와 따로 살다 보니 부모 자식 사이라도 정을 나눌 시간을 갖지 못해 혈연의 정도 예전처럼 끈끈하지 못한 게 이 시대 가족의 모습이다. 호적에는 자식도 있고 손주도 있지만 부부마저 각 방을 쓰며 혼자 사는 것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은 늘 외롭다.
三代삼대가 한집에서 살던 지난날의 가족관계가 무너지다 보니 祖孫조손의 정도 끊어지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라 자위한다고 해서 혼자라는 외로움이 다스려질까? 집이라면 식구가 많아야 多福다복하고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함께 살아야 부모 자식이라도 진하게 정을 나눌 수 있다. 나이 든 부모가 바라는 유일한 행복이라면 손주와 자주 시간을 가지는 일 말고 무엇이 따로 있을까?
자식이 부모와 오래 같이 지내고 결혼한 자식과 손주가 자주 오는 집이라면 부부가 각방을 쓰지 않을 것이다. 부부만 사는 집에 비어있는 방은 빈방이 아니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식이 오면 묵어갈 방이고 자식이 출가하면 손주가 쓸 방이다. 그러니 방이 남는다고 해서 부부가 각방을 쓸 수 없지 않은가? 손주가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간다면 祖孫조손 간의 정도 쌓일 테니 노후에 오랫동안 찾아올 손주를 기다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손주가 편히 자고 갈 수 있도록 사랑방을 독립적으로 배치한 필자 설계 양산 석경수헌
거실을 두고 좌우로 주인 부부 영역과 손님 영역을 나누어 배치했다. 툇마루를 통해 사랑마당으로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세대의 가정을 지난날에는 아내들이 지켜왔다면 이 시대의 가정은 손주가 지킬 수 있다. 삼대가 함께 살던 옛날에는 부모를 모시면서 부부는 어지간히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큰 소리를 내며 다투기가 어려웠었다. 이제는 손주가 자주 오는 집이 되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야 하니 서로 양보하며 잘 지내게 되지 않겠는가?
일인가구가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로 느는 이유는 가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찾아오지 않고, 부부가 ‘各房각방’을 쓰면서 대화 없이 살다 보니 ‘卒婚졸혼’이라는 어이없는 부부 문화까지 생겨나고 있다. 삼대가 한집에 사는 건 아파트 주거의 한계 때문에 어렵다고 해도 祖孫조손 간의 정을 이어갈 수 있으면 가정을 지킬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다툴 수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주는 사랑은 무조건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방이 비어 있다고 해도 부부가 각방을 쓰면 안 된다. 그 방이 손주가 쓸 방으로 준비되어 있으면 노후의 행복이 보장된다.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살지만 머무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연령대에 따라 달라진다.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고 주로 집 안에서 지내야 할 때가 되면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 손주가 되고 자주 찾아오는 집, 그 집이 내가 사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후에 가질 수 있는 행복으로 이만한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