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반려견 몽이가 열다섯 나이로 귀천했다. 사람 나이로는 여든 정도라고 하니 천수를 누렸다고 봐도 되니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욕심일 수도 있겠다. 잔병이 별로 없이 잘 지내던 몽이가 일 년 전부터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아내가 뒷바라지를 했었다. 그러다 사료를 제대로 먹지 못해 이틀간 입원을 했다가 퇴원한 날 밤새 힘겨워하더니 다음 날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일 년 정도 다리를 못써서 힘들게 지내긴 했었어도 열 다섯 해를 살면서 몇 번 병원을 다녀온 일 말고는 식구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살았다. 반려견을 입양한 건 처음이었지만 몽이는 워낙 착하고 점잖아서 금세 식구로 우리와 사는데 무리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동물보다 식물을 더 좋아해서 반려견을 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딸이 책임지고 돌본다며 애걸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말았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들이게 된 사정을 들어보면 우리집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사실 아내는 덜했지만 나는 동물을 혐오까지는 아니었지만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집에 온 강아지는 머그컵만 한 요크셔트리아, 새까만 모습에 아직 젖도 채 떼지 않아 보였다. 이 녀석은 내게 잘 보이려고 그랬는지 차를 잔에 담아주니 잘도 받아먹었다. 차를 핥아 먹는 걸 보니 싫어하던 동물에 대한 마음이 싹 없어져 버렸다.
몽이라는 이름도 내가 지어서 우리 식구로 반려견의 견생을 시작했다. 그 무렵에 아내는 갱년기를 겪게 되었다. 내성적인 아내는 갱년기를 겪고 있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아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속으로 삼키는 고통이 더 힘든 법인데 나에게도 딸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아서 갱년기 없이 보낸 줄 알았다. 그 힘든 시간에 우리 식구가 된 몽이는 아내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개나 고양이를 사람 취급하는 걸 보고 질색을 한다. '몽이 엄마, 몽이 아빠'라니 무슨 이런 일이 있냐고 눈을 홀긴다. 개나 고양이와 한 이불을 덮고 입을 맞추고 가슴에 품고 가는 걸 보면서 질겁을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몽이와 살지 않았던 지난날에는 나도 그랬으니까.
몽이는 따로 훈련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용변은 꼭 욕실이나 발코니에서 봤고 우리가 쓰는 그릇에 담긴 음식에는 입을 대지 않았다. 식구 중에 누가 늦게 귀가하면 잠을 자지 않고 현관 앞에서 기다렸으며 아내가 몸살이라도 앓으면 병구완하듯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라도 이렇게 하기는 어려울 테니 어찌 동물과 사람을 따로 볼 수 있을까? 몽이가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말을 하지 않을 뿐 식구로서 다르게 대할 게 없었다.
우리가 흔히 '개보다 못한 놈'이라든지 '개나 줘버려라'라며 개를 비하하는 말을 쉽게 쓴다. 그렇지만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반려동물로 바꿔 쓰게 된 건 얼마나 당연한가? 개가 사람과 함께 살게 된 건 아주 오래되었다. 재난 현장에서 활약하는 구조견, 맹인의 눈이 되어주는 인도견, 마약을 탐지하거나 범인을 찾아내는 경찰견, 군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하는 수색견, 사냥꾼과 함께 하는 사냥견 등 개들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굳이 특수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집을 지키거나 사람을 보호해서 목숨을 내놓다 싶어 하는 개와 관련된 미담은 지금도 흔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도 개보다 못하다며 비하하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다. 아내가 갱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몽이가 애쓴 덕분이니 세상의 반려견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몽이가 우리와 살았던 열다섯 해, 우리 식구가 몽이와 넷이었다가 딸이 결혼을 하면서 사위가 생기면서 다섯이 되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인 건 몽이가 사위를 특히 따랐다는 것이다. 사위와 딸이 집에 오면 딸보다 사위에게 더 살갑게 대하니 딸이 진심을 담아 섭섭하다고 했을 정도였다. 피를 나누지 않은 우리 식구인 건 몽이나 사위가 같은 처지였기 때문이었을까?
손녀가 태어나면서 온 식구의 관심이 자연스레 몽이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손녀가 다녀가고 나면 힘없이 축 처져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십 년 이상 식구들에게 사랑스러운 눈길을 독차지했었던 몽이가 새 생명에게 옮겨간 걸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딸이 우리집에 다녀가고 나면 아내는 남모르게 걱정을 하곤 했었다. 사실 이 무렵부터 몽이도 나이만큼 건강이 무너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도 몽이가 걱정이 되어 우리집에 오면 특별하게 눈길과 손길을 더해 주었지만 노견이 된 몽이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져갔다. 손녀도 자라면서 몽이를 좋아했고 영상 통화를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몽이를 먼저 찾을 정도였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손주가 몽이를 챙기는 만큼 건강은 더 좋지 않은 상태로 가고 있었다. 손주가 조금만 더 일찍 우리에게 왔었다면 몽이가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셋이 살던 집에 몽이가 들어와 넷이 되었고 사위가 새 식구가 되면서 다섯, 손주가 태어나면서 여섯으로 대식구를 이루며 살게 되었다. 한 집에 사는 건 아니지만 거의 매주 주말이나 휴일은 여섯 식구가 식탁에 마주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앉지 못하는 식구인 몽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아내는 손주 대신 몽이를 안고 밥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만은 사람이 아닌 설움을 삭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2022년 10월 24일 오전 11시 30분, 몽이는 우리를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生者必滅 會者定離-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날이 오며, 만나면 헤어지게 되는 건 정해진 이치라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들었다. 식구들이 몽이의 임종을 지켰고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다. 우리와 몽이는 견주와 반려견이 아니라 한 식구로서 잘 살았으니 여한 없이 이 세상에 소풍 와서 하늘로 잘 돌아갔을 것이라 믿는다. 몽아, 잘 살아줘서 고맙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