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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an 13. 2023

차, 그냥 마셔도 좋습니다만

좋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차 마신 지 20여 년, 그래도 아직 차맛을 제대로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우려서 찻잔에 따라 마신다' 이렇게 해서 차를 마시면 그만이지만 '차맛을 안다'라고 하는 건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물 마시듯 마신다면 차와 입만 있으면 되지만 차를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는 다른 게 더 필요하다.


차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하고. 차를 우리는 찻그릇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며 찻자리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차의 종주국인 중국에는 차 종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릇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 많은 차와 그릇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만 제맛을 낼 수 있다. 어떤 것이라도 가까이하기만 하고 잘 알지 못하면 다만 쓸 뿐이지 나와 그 대상이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꽤 오래 차를 마셨으나 차나 그릇을 알려고 하는 노력이 충분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를 구하려고 애쓰기보다 손에 들어오는 대로 마셨으니 진지하게 차를 대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정보 검색을 통해 해결하면서 꾸준히 이런저런 雜識잡식은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있다.


찻그릇 또한 손에 잡히는 대로 차호나 개완에 차를 우렸고, 잔으로 보이면 차를 담아 마시고 있다. 중국차를 마신 지 그럭저럭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내세울만한 자사호 하나 갖춘 게 없다. 자사호 하나에는 한 종류의 차만 우려야 차가 내는 온전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만큼 구감이 예민하지 않으니 생차와 숙차를 구분해서 쓰고 있다.

차를 정성으로 대하면 다우라는 복을 받느니


차를 마시는 마음을 가진다는 건 정성으로 차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 정성이란 한 마디로 간절한 마음으로 차를 찾아야 하며 어떻게 구했느냐에 따라 그 기대치도 달라질 것이다. 특히 보이차는 돈으로는 좋은 차를 구하는데 한계가 있고 사람과의 인연으로 마셔볼 수 있었다. 그분들께 두어 번 마실 양을 나눔 받았던 차를 우릴 때는 마음이 설레고 차를 따르는 손이 떨리기까지 한다.


마음이 설레고 손이 떨리는 찻자리, 그런 자리에서 차를 마시게 된다면 온전하게 차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리를 기다리고 어떤 차가 나올 것인지 기대하며 한 자리에 같이 앉을 수 있는 사람을  다우라고 부른다. 차를 오래 마시다 보니 다우와 함께 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의 차생활도 폭은 넓어지게 깊이도 더해지게 되었다.


물론 항상 마음을 담아서 차를 마신다는 건 지금 마시고 있는 차를 온전히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듯 편하게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마음을 더해 차를 대하면 소확행을 얻을 수 있다. 한 가지 차를 놓고 좋고 귀하다는 의미가 마음을 담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걸 안다면 차생활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욕심이나 돈만 있다고 해서 좋은 차를 마실 수 있겠는가?



보이차는 돈만 치른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향미를 가진 차를 얻을 수 없다. 상인은 상품으로 차를 팔지만 다우는 마음을 나누면서 차를 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마실 수 있는 차와 인연이 이어진다. 보이차는 하늘의 별만큼 종류가 많다고 하는데 내 욕심이나 돈만 가지고 어떤 차를 마실 수 있겠는가?


내 기억에 남아있는 좋은 차 한 잔은 돈을 주고 마셨던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면서 음미할 수 있었다. 경주 어느 골짜기의 차실에서 하룻밤 묵으며 마셨던 노차, 이제 고인이 되어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는 두 분과 마셨던 차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나를 찾아오는 다우들께 정성을 다해 그분들이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차를 내어야 하겠다. 



값비싼 차를 마셨다는 자랑보다 참 좋은 차를 마셨다는 얘길 들을 수 있어야 온전한 찻자리라 할 수 있다. 좋은 차만큼 그 차를 제대로 마실 수 있도록 애쓰는 마음이 다우에게 전해져야 할 것이다. 내가 20여 년을 차와 함께 하면서 차를 마시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마음을 나누는 좋은 다우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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