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라는 기성품 집이 도저히 우리 식구들의 삶에 맞지 않아서 ‘우리집’이라는 맞춤집을 ‘쌩고생’을 해서 지었는데 살아보면 좋기만 할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하면서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녹색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이 있는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계획을 세워지었는데도 크게 놓친 부분이 사소한 것인 걸 알고 나면 허탕해질지도 모른다.
집 짓기라는 꿈이 현실이 되었으면 기다리던 삶으로 살 수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꼭 챙겨야 할 걸 놓치고 지어버린 집은 달콤한 꿈이 아니라 악몽이 되어버린다. 잔디마당을 꿈꾸면서도 잔디관리라는 현실을 생각했을까? 한 달만 돌보지 않으면 밖에서 날아든 풀씨가 뿌리를 내려 마당은 풀밭이 되기 시작한다.
꼭 챙겨야 할 걸 놓치고 지어버린 집은 달콤한 꿈이 아니라 악몽이 되어버린다
일층 바닥을 땅에서 여유 있게 올려 짓지 않은 집은 여름의 습기와 벌레로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보름 내내 장마가 계속되는데 창문을 열어 놓지 못하면 생활의 질이 어떻게 될까? 지난 장마 끝에 비 맞은 햇볕이 잘 닿지 않는 북쪽 외벽에는 이끼가 끼기 시작하고 나무를 썼다면 썩을 수도 있다.
공동주택처럼 관리인이 집을 돌봐주지 않으니 단독주택에 살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집주인의 몫이다. 별나게(?) ‘우리집’을 지어서 누리고 사는 대가 치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는 사람이 많다. 여성지에서 보고 맘에 들어 딱 그렇게 지었던 집이니 사진과 글 내용처럼 꿈같아야 할 일상이 우리 식구에게도 주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필자 설계 부산 이입재(설계 도반건축사사무소)-시원스레 빠져나온 처마는 백년가로 수명을 이어가는 첨병이 된다
그림 같은 집에서 산다는 건
인물만 보고 선택한 배우자와 사는 결혼 생활은 어떨까? 물론 인물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할 어리석은 사람이 있으랴 마는 우선 조건이 그랬다면 후회막심인 현실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집이라고 사람의 선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디자인에 관심이 집중되어 잘 그려진 투시도에 혹해 지어진 집도 그렇게 된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자 말자 이 사람과 평생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게 되는 삶, 화보 속의 집처럼 지었는데 ‘우리집’이 되고 보면 속았다고 탄식을 할지도 모른다. 배우자는 무조건 외모보다 속이 꽉 찬 내실 있는 사람이라야 살아보면 볼수록 감춰진 매력이 드러나듯 집도 그렇다.
배우자도, 집도 내가 선택한 결론이니 같이 살게 되고 나서 후회하면 때는 늦으리니 누구를 원망하랴
집터를 찾을 때도 수려한 경관에 눈이 팔리기보다 양명陽明하여 햇볕이 잘 드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얼마 가지 않아서 바다가 있는지 산이 보이는지 모르고 살게 된다. 집에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바람을 너무 타는 곳에 집을 지었다면 하루하루가 힘든 일상을 보내게 된다.
눈으로 보아서 좋다고 내리는 판단은 그만큼 후회를 부르게 된다. 몸이 편한 집이라야 마음도 편해지는데 그건 살아봐야 할 문제라고 무시해 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배우자도, 집도 내가 선택한 결론이니 같이 살게 되고 나서 후회하면 때는 늦으리니 누구를 원망하랴.
보기만 해도 빨려 들듯한 바다 풍경, 이 바다를 보면서 매일 탄성을 지르며 살게 될까? 바다 바람에 실려오는 소금기 머금은 습기는 어쩌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배우자나 집이나 속내부터 살피고 나서 봐야 하는 외모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살아보고 선택하면 집이나 사람을 알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어떤 사람을 선택하든 내 맘에 꼭 드는 사람이 없듯이 집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겉보다 속에 더 관심을 가져서 선택과 결정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내면은 깊어 보이는데 모양새가 내 맘에 차지 않고, 외모가 출중하면 내면을 살피는 걸 잊어버린다. 눈으로 보는 건 잠깐이면 되지만 속내를 챙기려면 끝없이 살펴야 할 게 나온다. 집 짓기의 목표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집을 지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 식구의 일상이 담겨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배우자도, '우리집'도 내가 선택한 결론이니 같이 살게 되고 나서 후회하면 때는 늦으리니 누구를 원망하랴
배우자도, 집도 내가 선택한 결론이니 같이 살게 되고 나서 후회하면 때는 늦으리니 누구를 원망하랴.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관객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리허설을 통해 살펴보듯이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중에서 집의 유지관리에 관한 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필수 항목이다.
집을 지을 때 비 안 새고 물 잘 빠지도록 챙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십중팔구 하자가 여기에서 나온다. 옥상에서 방수가 문제가 되고 창틀 주변에서 물이 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외장 재료를 모양새에 치중하다 보면 나무를 쓰거나 노출 콘크리트나 시멘트 벽돌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한다.
목재는 비를 맞아 썩기 쉽고 햇볕에 탈색이 되니 관리가 어려운 재료이다. 노출 콘크리트나 시멘트 벽돌은 빗물을 흡수하기 마련이니 이끼가 끼고 오염이 되면 원상태로 돌릴 수가 없다. 창틀을 끼우면서 생기는 틈새는 실리콘으로 메우게 되는데 하자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분이 된다.
집에 생기는 하자가 손보기 쉬운 건 괜찮지만 전체를 뜯어내어 교체가 필요하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손을 쓸 수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는 하자는 집짓기 자체를 후회하게 한다. 이런 중대 하자는 모양새에 눈이 팔리게 하는 예쁘기만 한 집에서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상을 받은 유명한 집인데 목재를 쓴 북쪽 벽은 비에 젖어 색이 변하고 있고 철재를 쓴 부위는 붉은 녹이 흘러내리고 있다
백년가百年家를 보장하는 처마
옛집에 있는 데 요즘 짓는 집에는 없는 건축요소를 꼽으라고 하면 처마라고 얘기할 수 있다. 집의 최상층이나 층간에 외벽으로부터 빠져나와 있는 부분이다. 지역을 불문하고 목조로 지었던 옛집은 경사지붕이 연장된 처마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한옥의 경우에는 팔작지붕이든 박공지붕이든 처마가 길게 빠져나와 있다. 골조를 나무로 하고 외벽이 흙으로 썼던 옛집은 처마 없이는 집이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핏 아는 지식으로는 처마선이 아름다운 우리 한옥의 눈요기 거리 정도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처마가 길게 빠져나온 덕택에 나무로 지은 집인데도 천년 가까이 버텨온 집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지어졌고 봉정사 극락전은 이보다 100년을 앞선다고 하니 가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려시대 말에 지은 집이 지금도 쓰임새를 유지하면서 고졸한 모양새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말에 지은 집인데 지금도 쓰임새를 유지하면서 고졸한 모양새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목조로 지은 집이 수백 년을 끄떡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철근콘크리트조로 지은 요즘 집은 50년이면 왜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참 단순하게도 처마가 없기 때문이다. 처마가 없는 집은 빗물이 외벽에 바로 닿아 외벽의 오염뿐 아니라 창호의 틈새로 누수가 생기는 원인이 된다. 또 정남향으로 지은 집일지라도 처마가 없으면 여름 햇살을 가려주지 못하면서 비에 무방비 상태라서 내부 공간의 질을 악화시키게 된다.
처마 아래 공간은 실내와 외부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거실에 면한 남향의 처마 아래 공간은 내부 공간과 이어져 다양한 쓰임새가 나온다. 또 배면의 처마 아래는 마당 관리에 쓰는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자리가 된다. 비가 오면 창문을 열어 빗소리도 듣고 여름 햇살이 뜨거워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파수꾼이 되어준다.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 지붕 끝으로 빠져나온 처마가 이 집을 수백 년간 지켜주고 있다
처마 하나로 ‘우리집’의 유지관리를 잊고 살 수 있으며 백 년의 수명을 기약하는 백년가百年家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설계자들은 왜 집에 처마를 두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설계자가 처마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어도 무시하는 이유가 있다. 그게 왜 그런지 궁금하다면 이어지는 글에서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