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님과 첫 만남에서 집짓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좀 더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려고 지번을 미리 받아서 대안 스케치를 해 보았다. 대지 면적에서도 여유가 없는데 대지 모양과 주변 여건으로 집을 배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안을 세 가지로 검토해 보았는데 어렵사리 내린 부리님의 집짓기가 쉽게 진행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단독주택 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지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지와 주변의 조건을 살피는 것이다. 대지의 모양과 향, 대지에 면한 주변과의 관계를 파악하면 집을 앉히는데 필요한 사항이 도출된다.
대지 모양과 향의 관계는 장방형으로 동서로 길며 이형이라면 둔각으로 생겨야 좋다. 예각으로 대지 안으로 파고들면 흉하다. 대지에 면한 도로는 남쪽 변에 면하고 지반보다 낮아야 좋다. 인접대지와 고저차가 적어야 좋은데 우리 대지보다 낮아야 좋다.
동녘길 단독주택은 대지와 주변의 관계가 어떨까 살펴보았다. 대지의 모양은 이형이며 남북으로 길고 동쪽변이 인접대지가 둔각으로 밀려들어와 있다. 대지에 면한 도로는 북과 서쪽에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2미터 이상 도로가 높게 면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경사져 내려오고 있다.
좋다는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보자면 썩 좋은 점수를 주는 건 어려운 상태이다. 대지 면적에서 집을 여유 있게 앉히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방이 세 개가 들어가는 집을 앉혀야 하고 주차장과 마당도 나와야 하는데 원만하게 배치될 수 있을까? 부리님을 만나기 전에 대지의 지변을 받아서 스케치를 해보니 역시 쉽지 않다.
대안 1
일층으로 짓는 안으로 만들어 보았다. 방 세 개를 북쪽에 모아서 두고 주방과 거실을 길게 뽑아서 남쪽에 마당과 이어지는 안이다. 안뜰을 두어 주방의 외부 작업 공간과 큰 방과 작은 방에서 밖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개방성을 확보한다.
대안 2
일층으로 짓는 대안 1의 대안이다. 마당을 좀 더 넓게 쓸 수 있는 안인데 대안 1이 홑집인데 비해 대안 2는 겹집이 되어 내부 공간이 답답해졌다. 마당 분위기는 좋아졌지만 실내 공간이 나빠져서 선택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대안 3
역시 마당을 넓게 쓰기 위한 대안인데 계단실과 욕실이 더 추가되면서 면적이 늘어났다. 2층으로 지으면 공사비가 늘어나므로 예산 범위 밖의 안이 되어 채택이 어렵겠다. 대지 여건으로 보면 2층으로 짓는 게 타당해 보이지만 예산 확보의 한계가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부리님이 집짓기로 마음을 먹고 혼자 연구한 집의 구조 방식을 ALC 블록을 선택했었다. ALC블록은 일반적인 구조방식이 아니어서 시공자를 찾기도 어렵고 벽체두께도 두꺼워지는 등 제한 사항이 많아진다. 내가 추천하는 구조 방식은 샌드위치 패널로 벽체를 구성하고 골조는 경량철재로 가구식이다.
이 골조와 벽체는 전문 업체에서 건식으로 공사를 하므로 완성도가 높다. 또 공정이 줄어들어 공사기간이 짧고 샌드위치 패널은 단열성이 좋다. 외벽에는 다양한 마감재를 쓸 수 있어서 외관은 중후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시공사의 선택은 울산에 많은 업체가 있으므로 그 회사가 지은 집을 돌아보고 건축주와 면담을 통해 결정하면 좋겠다. 골조만 시공사에 의뢰하고 나머지 공정은 건축주가 직접 진행할 수도 있다. 부리님은 리모델링 공사를 직접 진행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하니 내부 인테리어와 외장 마감, 외부 공간 공사까지 할 수 있으면 공사비를 많이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만남에서 내가 준비했던 내용은 다행히 부리님이 대부분 수용해 주어서 집의 얼개는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현장 방문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지 경계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경계 측량을 하도록 요청했고 부리님은 즉시 진행해서 측량 일자가 나왔다. 측량이 이루어지고 나면 현장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