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경계복원측량에 이어 토목설계사무소에 대지현황측량을 의뢰해 달라고 건축주께 부탁을 드렸다. 건축주가 젊은 분이라 그런지 신속하게 측량을 의뢰했고 결과가 빠르게 나왔다. 한국토지정보공사의 경계복원측량으로 현장에 경계점이 표시된 근거로 대지와 주변의 건물과 도로 상황과 높낮이까지 도면에 표기가 되는 작업이다.
현황측량을 부탁하고 한 주 정도 만에 현황측량도가 메일로 들어왔다. 측량 결과는 현장을 보고 염려한 만큼은 아니지만 건물 배치에 어려움이 적지 않아 보였다. 직각이 한 곳도 없는 대지 형태에 도로에 들어가고 인접대지에서 점유하고 있기까지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차 떼고 포 떼고 나니 건물을 배치할 수 있는 자리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형국이다. 건축주를 처음 만났을 때 스케치했던 대안 중에 가장 불리한 안을 놓아도 원만치 않아 보이니 이를 어쩌나. 여기서 생각을 그치면 어쩔 수 없다는 차선책으로 안을 선택하고 말 수도 있게 된다.
부리님은 단독주택을 왜 지으려고 하나
단독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라야 한다는 게 건축사로서 나의 지론이다. 남이 만들어서 파는 집에 우리 식구의 삶을 맞추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집을 짓는 여건이 어떻다고 해도 이렇게 지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설계가 마무리될 수 있다.
동녘길 단독주택 건축주는 단독주택을 지어야 하는 절실한, 아니 절박하기까지 한 상황에 처해있다. 싱글맘으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어머니도 모셔야 할 상황에 큰 아이의 성장통을 극복해야 할 대안으로 집짓기를 감행하고 있다.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해 보이는 일을 젊은 싱글맘이 해내려 하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과 육아에 불편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집을 지으려는 사명감에 공감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 화가에게 캔버스가 그림의 바탕이 되듯 건축사는 주어진 대지 여건을 분석해서 설계의 밑그림을 그려나간다. 이제 대지에 대한 모든 조사가 마무리되었으니 원점에서 건축주가 바라는 행복한 삶을 담아낼 집을 다시 구상해 본다.
대지에서 건물이 앉을 수 있는 자리
대지의 형상은 이형이다. 대지에 맞닿아 있는 주변 상황을 보면 북측과 서측은 도로이고, 동측과 남측면은 인접 대지이다. 북측 도로는 우리 대지보다 1미터 정도 높고 서측도로는 경사지게 내려와서 대문이 위치하고 있다. 인접대지와는 동측 대지는 높고, 남측 대지는 낮은데 우리 땅을 점유하고 있다.
도로에 면하는 쪽으로는 법으로 도로 폭을 4미터 확보하게 되어 있다. 도로가 좁아서 우리 땅을 일부 내주다 보니 넓지 않은 대지 폭이 더 좁아졌는데 임의로 확장한 도로가 우리 땅을 침법해 있다. 대문이 설치되어야 하는 쪽으로 주차공간을 두어야 하니 건물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북동쪽에 남겨졌다.
건물이 앉을자리를 확보하고 나니 외부 공간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북측 도로가 높다 보니 건물을 띄워 앉혀 뒷마당을 두어야 집 안에 습기가 들어오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서측도로 쪽으로는 대문과 주차 공간으로 비워지고 남쪽에 작지만 마당을 둔다.
평면을 다시 구성해 보니
초기 기획안은 북측 도로와 평행하게 배치했는데 달라진 대지 조건으로는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집을 정남향으로 앉히고 동측 인접대지와 평행하게 배치했다. 거실은 주차 공간과 평행하게 앉혀서 주 매스와 결합해야 했다.
방은 큰 방과 작은 방 두 개를 연접해 앉힐 수 있는 폭을 얻을 수 있었다. 거실과 주방 영역이 남쪽으로 배치되면서 가운데에 욕실 영역이 여유 있게 나왔다. 사적 영역은 북쪽에, 공적 영역은 남쪽에 두게 되고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욕실과 현관이 하게 되었다.
평면의 폭이 넓어져서 다락을 두면 아이들 공부방 등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욕실 공간은 물을 쓰는 영역을 구분해서 파우더 공간과 가족들의 속옷을 두는 장을 두면 쓰임새가 좋을 것이다. 주방 영역도 큰 테이블을 둘 수 있어 쓰임새가 좋겠다.
침실의 가운데 방은 뒤뜰과 이어지고, 주방에서 뒤뜰로 이어지도록 통로를 확보했다. 작은 방 하나도 작지만 뜰을 가진다. 거실은 데크로 마당과 연결되는데 큰 나무를 심으면 여름에 나무 그늘을 즐길 수 있겠다.
동녘길 주택 초기 기획안-안뜰에 마음을 두었던 안, 마당과 뒤뜰까지 적은 면적이지만 외부 공간에 집중해서 작업을 했었다
도로와 인접대지에서 우리 땅을 점유하다보니 초기 기획안의 안뜰은 없어졌지만 내부 공간이 풍성해졌다.
계획안을 정리하다 보니 대지 조건은 처음보다 나빠졌는데 평면은 훨씬 좋아질 듯해 보인다. 내부 공간이 풍성해졌고 외부 공간이 정리되면서 집을 관리하기도 수월해져 보인다. 공적 영역은 경사 지붕 아래 공간이 깊어서 공간감이 좋은 집이 되겠다.
평면의 얼개를 풀어놓고 나니 이제 마음이 가벼워졌다. 상세하게 다듬어 보아야 하겠지만 이만한 집이라면 아파트 부러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확신이 든다. 아니 대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이 될 것이라 큰소리칠 수도 있겠다. 건축주인 부리님이 정리된 계획안을 보고 흡족해할 표정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