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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Nov 06. 2023

요즘 공공건축물 설계경기 심사 공정한가요?

건축사신문 2023년 11월호 건축시론

 “형님, A구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설계경기 결과 보셨습니까?”

출근해서 차 한 잔 하고 있는데 후배 건축사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 7월에 A구에서 시행했던 설계경기 결과가 구청 홈페이지에 소상하게 공개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보니 의아하다는 느낌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사무실 식구들과 함께 결승에 올랐던 다섯 작품을 보고 나서 각자 채점을 해보았다. 그 결과는 당선작은 가장 낮은 점수가 나왔고 차선 작이 만장일치로 최고점을 받았다. 우리만의 시각일 수도 있어서 가까운 동료 건축사들은 어떤 평가를 하는지 전화를 돌려 보았다.


역시 통화를 했던 동료 건축사들도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통화를 하면서 구청장에게 설계경기 결과에 불복한다는 탄원서를 보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탄원서는 협회에서 취합하여 회장이 구청장을 만나 건축사들의 설계 경기 불복의지를 전달하도록 하면 좋겠다고 했다.


탄원서는 스무 통이 넘게 모였지만 아쉽게도 구청장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탄원서를 실명으로 쓴 게 열 개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불이익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의견에는 목소리를 함께 했지만 정작 방울을 달아보겠다는 쥐가 없었다는 우화가 떠올랐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의견에는 목소리를 함께 했지만 정작 방울을 달아보겠다는 쥐가 없었다


공공건축물 설계경기의 공정성에 대해 대한건축사협회에서도 칼을 빼들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021년 9월 10일 자 대한건축사신문 1면 헤드라인에 ‘건축사협회 설계공모  발본색원 의지···자정 운동+공정성 담보 시스템도 마련’이라 올린 글에는 설계공모판 완전히 썩었다는 원색적인 내용으로 시작되어 있다. ‘자정 운동+공정성 담보’ 시스템이 마련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대책으로 나올지 궁금하다.


공공건축물의 설계비는 민간 설계대가에 비할 수 없이 높은 데다 적게는 수억에서 수십억을 넘어선다. 그렇다 보니 민간 건축물의 설계 시장 위축과 바닥을 모르는 저가 설계비를 피해 많은 건축사들이 공공 건축물 설계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몇 달에 걸쳐 잠을 줄여가며 만든 출품작이 심사과정에서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


지금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 축구경기에서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 경기를 보았다.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몸싸움은 우리 선수들의 부상을 걱정할 정도로 심했다. 결국 우리 선수는 부상을 입어 경기장을 나와야 했고 우즈베키스탄 선수는 심판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아 경기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선수들이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건 오로지 이기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발로 공만 차는 것뿐 아니라 상대 선수를 차기도 하고 공을 다투면서 도를 넘는 몸싸움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축구 경기에는 룰이 있으니 심판은 엄정하게 선수의 불공정한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 그보다 더 무서워해야 하는 건 관중들이 보고 있으며 영상으로 시청하고 있는 수많은 눈이다.


설계경기에도 지켜야 할 규정이 있고 심사위원이 있으며 유튜브로 바라보는 시선과 공개되는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설계 경기에 참가하는 건축사들은 오로지 당선을 목표로 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그렇다 보니 규정과 지침을 넘어선 행동도 불사하며 불공정한 경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설계 경기에 참가하는 건축사들의 불공정한 행위를 제지하지 못하는 심사위원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분명히 설계 경기 규정에는 심사위원은 참가자들의 개인 접촉은 물론 통화까지도 금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접촉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으면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접촉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으니
심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A구청의 설계경기 결과를 본 거의 대다수 건축사들은 당선작이 다른 네 개의 입상작보다 못하다고 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왜 그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을까? 특히 차선작은 당선작과 비교할 수 없는 수작이었다고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작품을 뒤로 미루고 가장 뒤떨어져 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 안을 선정할 수 있었는지 심사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설계경기를 이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대한건축사협회의 공언이 허언이 아니길 바라지만 과연 솔로몬의 해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부산건축사회도 이대로 방관하고 있어서는 안 될 텐데 협회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없으니 안타깝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심사위원에 위촉된 건축사와 통화를 했는데 참가자들이 자꾸 전화를 해서 입장이 곤란하다고 한다.


해운대구 신청사 설계경기 심사에 불복해 참가 건축사가 부산일보에 낸 광고




설계경기는 설계자를 정하는 요식 행위가 아니라 가장 우수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기 위한 절차이다. 지어지고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써야 할 건축물이며 혈세로 짓게 되는데 당연히 좋은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설계경기가 참가자와 심사위원의 뒷거래로 당선작이 선정된다는 세간의 풍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서글픈 심정으로 글을 맺는다.


-건축사신문 2023년 11월호 건축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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