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주방 일을 하다가 손에 들었던 걸 놓쳐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이코 사고 쳤네” 였다고 한다. 거실 한쪽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손주가 달려와서 하는 말이 “엄마, 이렇게 사고 치려면 집 나가!!!”
엄마 보고 집을 나가라니 이 무슨 망발이냐 싶다. 이제 네 돌도 안 된 꼬마가 제 엄마 더러 집을 나가라니. 딸이 손주에게 되받아서 하는 말, “엄마 집 나갈까?” 그러니까? 손사래를 치며 몇 번이고 “아니 아니”를 외치더란다.
손주가 이렇게 지 엄마더러 집 나가라고 한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그건 당연히 엄마에게 배운 말이다. 미운 다섯 살이 한참 앞당겨져서 요즘 아이들은 세 살도 있고, 빠르면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당황하게 하는 모양이다.
손주는 가끔 이유도, 근거도 없이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고 한다. 나도 손주가 고집을 피우는 걸 본 적이 있지만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럴 때 부화가 난 딸이 달래다 못해 손주에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집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어린 꼬마가 지난 일을 기억하겠나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엄마가 제게 했었던 말을 속에 담아 두었다가 이 때다 싶어 그렇게 써먹은 것일 터이다. 엄마도 내가 고집을 피울 때 잘못한다며 집 나가라고 했으니.
네 살 배기가 사고 쳤다는 게 어떤 상황이라는 걸 알고 그렇게 얘기했을까? 그런데 그렇게 적재적소에 잘못하면 집에서 쫓겨난다는 걸 알아 그 말을 쓰다니 기가 막힌다. 이 예를 들어서 딸과 손주의 이번 해프닝을 이야기해 보았는데 이밖에도 혀를 내두를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기억을 더듬어보면 손주가 자라는 걸 지켜보면서 놀라기 시작한 건 두 돌이 지날 무렵부터인 것 같다. 말이 빨라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하배 하매'라 부르는 전 단계 없이 똑똑한 발음으로 바로 시작했던 손주다. 달력을 보면서 숫자를 일이삼사로 읽어내더니 이어서 하나 둘셋넷으로 순서를 말하는 걸 보며 깜짝 놀랐다. 식구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것도 세 돌이 되기도 전의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에 삼신할매에게 미리 배워 나오는 것일까? 싫다 좋다는 표현도 세 돌 전에 분명하게 하더니 부끄럽다는 말과 함께 기저귀를 떼고 변기를 쓰게 되었다. 그제께는 예방 접종을 하러 갔는데 병원으로 씩씩하게 들어가더니 주사를 맞으면서 찡그리기만 할 뿐 울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네 돌이 되려면 일곱 달이나 남았는데 신통한 녀석이다.
동화책을 펴 들면 한 시간씩 꼼짝하지 않고 집중해서 보고 있다. 동화를 책으로도 보지만 작은 영상기기로도 보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그 영상기기로 보는 것도 동영상이 아니라 정지된 화면에 성우가 글을 읽어준다. 요즘 아이들이 보는 책은 음성 지원이 다 되어 있어서 습득하는 지식의 양이 상상 이상이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내년이면 글도 읽지 않을까 싶은데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몇 살로 잡아야 할까? “엄마, 그렇게 사고 치려면 집 나가” 할아버지도 사고 칠 수 있는데 집 나가라 할까 싶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