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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Oct 13. 2023

계단에서 굴렀다

사고는 예고가 없으니

올해는 이런저런 일로 몸과 마음을 다치는 사고가 계속 터진다. 믿거나 말거나 삼재수에 들어 그렇다고 마음을 수습해 보지만 버텨내는 게 너무 힘 든다. 이 시대에 연대보증으로 피해를 보냐며 안타까워하는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계단을 헛디뎌서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     


나잇살 깨나 먹고 주변에서 혀 차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신세라니 참 기가 막힌다. 이날까지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헛발질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어제는 왜 그랬을까? 6년 전에는 평지에서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쳤는데 이번에는 계단에서 굴러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고관절을 다쳐 오른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오른팔 타박상에 머리통까지 깨졌다.     


사무실이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4층에 있다. 거의 십오 년을 하루에도 몇 차례 오르내리는 계단이라 눈 감고 다닐 길인데 헛발질을 해서 굴렀다. 평지와 다르게 계단에서 사고가 나면 사망 아니면 중상이라 할 정도로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깨와 팔목 타박상에 머리가 찢어지는 정도에 그쳤으니 이를 두고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 건가 싶다.     

어깨와 팔목 타박상에 머리가 찢어지는 정도로 그쳤으니
이를 두고 불행 중 다행이라 하는 건가 싶다


올해 구월 말과 시월 초는 추석 연휴를 이어 개천절과 한글날이 붙어 있어 일 할 시간이 모자라는 기간이다. 연휴를 쉬고 출근해서 할 일이 밀려 있는데 사고를 당했으니 기가 찬다. 그런데 어떡하랴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사고를 당했으니 일을 미룰 수밖에 별 수 없지 않은가?   


머리에서 피가 흐르니 응급조치로 티슈를 둘둘 말아서 상처 부위에 대고 병원으로 향했다. 사무실 근처에 대학 병원은 있는데 별 일이 아닐 거라며 예전에 다녔던 외과 의원으로 달렸다. 접수를 하고 피를 닦으며 한참 기다려 의사를 만나 상황을 얘기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머리통이 깨진 건 보통 상태가 아니니 신경외과의 진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계단을 구르며 부딪친 어깨와 팔목이 부어오르지 않는 걸 보니 괜찮은 걸로 생각했었다. 할 일이 재여 있으니 큰 사고가 아니길 바랐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니 걱정이 앞선다.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앞세우고 의사가 가보라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십여 년 전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보긴 했어도 내 발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어께와 팔목 상태 확인은 X-RAY, 머리통 깨진 건 CT 촬영을 해야 했다. 하필 내가 들어가니 뒤따라서 응급실로 몇 명이 들이닥친다. 응급실은 급한 환자 우선이니 내가 먼저 들어갔어도 순서에서 밀렸다.    

 

두 다리는 멀쩡한데 응급실 환자라 그런지 휠체어에 실려 영상검사실로 갔다. CT로 머리부터 찍고 X-RAY 촬영으로 어깨와 손목 부위의 상태를 보아야 했다. 촬영은 마친지 한참이 지났는데 응급실 상황으로 찢어진 머리를 봐주질 않는다. 내가 응급실 환자로는 경상인가 보다.     


응급실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머리 찢어진 걸 꿰맬 수 있었다. 영상촬영 검사 결과도 나왔는데 다행히 걱정할 상태는 아니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인데 좋아할 일은 아닌 거다. 이제 급한 불을 껐으니 일을 챙겨야 해서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팔이 부러지든 머리통이 깨지든
내 일은 누가 대신해 주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팔이 부러지든 머리통이 깨지든 내 일은 누가 대신해 주지 않으니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선 순위는 건강이다. 피가 흐르는 머리통을 티슈로 싸매고 병원 응급실이 아닌 의원으로 달려 간 것도 일 걱정 때문이었다. 피는 나지만 별 일은 아닐 거라며 애써 상처만 치료하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마냥 내 생각이었다.

     

사고는 그야말로 사고라서 ‘조심 좀 하지 그랬어’라는 말을 건네면 절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부주의의 산물인 건 틀림없다. 고관절골절이라는 엄청난 사고를 당한 뒤 발걸음 디딜 때마다 조심한다는 마음으로 걸었지만 또 사고를 당했다.      


고관절골절 후유증으로 정상 보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깨와 손목까지 크게 다칠 뻔 했다. 그뿐이랴 조금만 더 높은 위치에서 헛발질 했더라면 머리통도 남아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발걸음 한 발자국 앞이 저승문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하루였다.    


 



오전에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통을 싸매고 병원으로 달렸는데 저녁에는 밀린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쁜 일은 좋은 일을 앞두고 액막이로 당한다고 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또 삼재풀이로 이만하게 넘어간다고 마음을 먹으면 될 일이고...그렇지만 어깨 통증은 오래 갈듯하니 그 기간만큼 마음공부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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