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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an 24. 2024

2023년, 우리가 집에서 행복하지 않은 이유

IKEA ‘2023 Life at Home Report를 읽고

이케아(IKEA)에서 행복한 집 생활에 관한 연구 조사 결과를 담은 ‘2023 라이프 앳 홈 보고서 (Life at Home Report)’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집에서의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 40개국 약 25만 명의 조사 참여자를 대상으로 수집한 자료와 2023년 한국을 비롯한 세계 38개국 3만 742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를 분석한 결과이다.  

    

이 보고서의 조사 결과와 분석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거 생활의 현주소를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데이터이다. K-Culture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며 우리나라가 주목받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네 일상은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이다. 집에서 지내는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느 곳에서 편안할 수 있을까?   

   

보고서의 제목에서 Life at Home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Home과 House의 차이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행복한 삶이라는 의미를 담은 Home이기보다 부동산 가치로 평가하는 House에 가깝다. 아파트라는 집은 Home의 조건에 부합되지 못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해운대의 높은 빌딩은 거의 아파트이다. 도시를 꽉 채우고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의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읅까?

  

긍정적인 주거 생활의 조건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응답자의 60%가 현재 집에서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응답자는 43%만이 이에 동의했는데 조사 대상 국가 중 두 번째로 낮은 순위다. 이케아는 10년간 축적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주도권, 안락함, 안전함, 돌봄, 소속감, 즐거움, 성취감, 희망 등 여덟 가지를 더 나은 집에서의 생활을 만드는 필요 요소로 꼽았다.      


보고서는 여덟 가지 필요 요소가 충족됐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앞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앞날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들이 전 세계 응답자의 47%였는데, 집에서 여덟 가지 필요 요소가 모두 충족된다고 느끼는 응답자에게선 이 비율이 65%까지 상승했다.     


이케아의 ‘2023 라이프 앳 홈 보고서’는 행복한 집 생활을 위한 여덟 가지 필요 요소의 충족을 방해하는 갈등으로 ‘더 하기 vs 덜 하기’, ‘함께하기 vs 프라이버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 vs 비용 효율적인 삶’으로 꼽았다. 한국에선 덜 하기와 프라이버시를 선호하면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과 비용 효율적인 삶 사이의 갈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들은 집에서 ‘더 하기’에 해당하는 일, 취미, 정리 정돈 등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보다 조용하게 여유를 즐기는 ‘덜 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집에서 자녀나 손주를 가르치며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한 비율은 전 세계 응답자에서는 22%였는데, 한국은 8%에 그쳤다.

     

아파트에서 지내며 할 수 있는 일은 TV 보고 씻고 잠자는 일 이외 무엇을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이케아 보고서에서 제시한 주거 생활을 위한 여덟 가지 필요 요소의 충족을 위한 더하기와 함께 하기는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녀나 손주와 함께 하는 생활도 아파트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필자 설계(도반건축사사무소)- 경남 양산 심한재-집에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로 설계가 이루어졌다


집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곳?     


또 보고서에서 긴장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이상적인 집으로 여기는 비율은 전 세계 응답자에서 43%였지만, 한국 사람들은 58%에 달했다. 한국 사람들은 집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곳이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며 재충전하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길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한집에서 대가족이 함께 사는 걸 당연시 여겼다. 장남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의무라고 여겼고 손주의 양육은 조부모가 힘을 보탰다. 삼대가 한 집에 살면서 노후 생활을 자식의 봉양을 받으며 사는 게 어느 한 집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파트 생활은 어떤가? 삼대가 한 집에서 사는 세대는 눈을 씻고 찾아보면 어쩌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집을 떠나 독립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자식들이 떠나고 부부만 남은 집도 각방 살이로 따로 방을 쓰게 되니 그야말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침범 불가한 일상이 되고 있다.     


개인이 긴장을 풀고 편히 쉰다는 의미가 극대화된 주거 행태가 바로 일인 세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고, 심지어 졸혼이라는 이상한 부부 관계마저 발생하고 있으니 아파트 주거가 만들어내는 사회 현상이 두렵기까지 하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 집에 사람을 만들어간다는 처칠의 말씀이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필자설계 경남 양산 지산심한-작은 집이지만 집에서의 생활에 부족함이 없도록 애써 지은  집이다

  

집에서 식구와 함께 산다는 의미       


보고서에서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과 웃는 것이 삶에 즐거움을 준다고 대답한 비율은 전 세계 응답자에서 33%였지만, 한국 사람들은 14%에 불과했다. 또 한국 응답자의 40%가 홀로 보내는 시간을 집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는데, 나만의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가장 크게 바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상적인 집 분위기를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파트는 수십 층높이라서 창을 넘는 웃음소리를 듣기도 어렵겠다. 식구들은 어떨 때 웃게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밥을 먹는 자리에서 가장 웃음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우리나라는 가족은 있어도 식구는 없다는 게 아파트에 사는 우리의 현실이다.     


TV 광고에는 주방기구가 아니라 가구라며 디자인과 첨단 기능이 어우러진 최신 아파트 주방을 선보인다. 그런데 가족 구성원의 개인 일정 때문에 아침밥을 같이 먹지도 못하고 집을 나서기 바쁘다. 저녁도 귀가 시간이 다 달라서 한 집에 살아도 마주 볼 기회가 여의치 않다.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가 있어야 웃음소리도 날 텐데 창은 늘 굳게 닫혀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게 집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응답을 보니 우리 주거 생활의 현실이 참담하게 느껴진다. 왜 일인 세대가 증가하고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어나며 졸혼이라는 이상한 말이 나오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방에서, 졸혼으로 살며, 일인 세대에서 혼자 지내는 분들이 늘고 있으니 안타깝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석경수헌-넓은 대지에 작은 집을 지어 집에서의 생활이 더없이 즐겁도록 의도해서 지었다

  

집에서 무엇을 하던지 덜 하는 것보다 더 해야 하며, 혼자 사는 것보다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게 행복하지 않은가? 또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살아야만 웃을 일이 자주 생기며 서로 챙겨주고 살아야 살맛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집에서 서로 양보하며 챙겨주면서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도 얼마든지 개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식구 없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집은 Home이랄 수 없으니 어떻게 우리 주거 생활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케아는 ‘많은 사람을 위한 더 좋은 생활을 만든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2014년부터 전 세계 사람들의 집 생활을 연구한 ‘라이프 앳 홈 보고서(Life at home report)’를 해마다 발표해 오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만족감을 파악해 우리가 집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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