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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Mar 14. 2024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차 한 잔의 대화

왜 나만의 즐거움이 아닌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공리주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인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흔히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줄여서 회자되는데 나 혼자 누리는 만족보다 남의 행복에 대해서 느끼는 즐거움에서 더 높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밀은 타인의 행복까지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이타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차를 마시다 보니 밀의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하게 된다. 차 생활은 나 혼자 누리는 만족에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함께 누리는 행복으로 나아가게 된다. 내가 먼저 만족할 수 있어야만 그 만족감을 나누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차를 마시면 절로 이루어지는 소통      


내가 좋아하는 차 생활을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더라도 ‘차 한 잔 하자’며 찻잔을 건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는 혼자 마셔도 좋지만 함께 마시면 만족감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혼자서 차를 마시는 것을 ‘자신과의 대화’라고 표현하듯이 함께 마시는 자리에는 대화가 빠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부부가 한집에 살아도 각방을 쓰면서 대화가 단절된 일상을 지내고 있다. 부모자식 간에도 한 자리에서 밥 먹는 게 쉽지 않다고 하니 서로 마음을 나눌 기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가장 쉽게 하는 말이 ‘언제 차 한 잔 하자’이다. ‘차 한 잔’이 ‘술 한 잔’이 되기도 하고 ‘밥 한 번 먹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 속내는 자리를 같이 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밥이나 술은 억지로 시간을 잡아야 하지만 차는 언제든 마실 수 있다.      


밥자리나 술자리에서는 보통 음식과 술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지만 찻자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밥자리는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자리를 뜨게 되고 술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게 된 의미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찻자리는 차향처럼 향기로운 분위기로 대화가 깊어진다.  

   

자신과의 대화, 혼자 마시는 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상의 관심사가 내면을 살피는 쪽으로 간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나를 돌아볼 틈 없이 바쁘게 살 수밖에 없다. 할 일을 다 하려면 밥 먹을 시간도, 잠잘 시간을 줄여야 하니 차 마실 시간을 가지는 건 언감생심이다.     


시간이 있어서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을 듣는다. 그런데 차 마실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 치부하는 게 현실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옳지만 직진해도 갈 길이 바쁘다고 하니 붙잡을 수 없다.     



어느 날부턴가 차 마실 시간을 갖게 되면서 바쁘게만 살았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었던 사람들이 곁에 없고 바삐 살면서 얻은 것들이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좀 더 일찍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졌어야 한다며 후회하지만 소용없는 지경이라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나마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찻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차의 향미를 음미하노라면 그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내가 보인다. 나와 마주 하면 그때는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 소용없는 시간이 된다. 계급장 떼고 빈 몸으로 앉은 나는 누구인가?  

   

대화가 필요한 때 함께 마시는 차     


요 며칠 사이에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조건 없이, 목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던 자리가 언제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배우자라도 좋고, 친구나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좋다.    

 

카톡이나 메시지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톡톡 손가락으로 친 짧은 말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거니 받거니 나누었던 대화는 통화마저 쉽지 않은 게 요즘 우리네 삶이다. 대학만 들어가면 집을 떠나 독립해 버리는 자식들은 가끔 다니러 와도 들어서면서 나설 폼을 잡는다.    

 

한 집에 같이 있으면서도 카톡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가족이라도, 부부라고 해도 대화가 끊어지면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 대화도 습관이며 친근해지려면 사소한 얘기가 오가야 한다. 대화가 필요한 사이는 부부와 자식이니 차 한 잔이 매개체가 된다.

     


테이블을 식탁이라고 부르지 않아야 한다. 탁자에서 차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면서 마주 앉아야 한다. 마주 볼 때가 싸울 때라고 하는 우스개가 빈말이 아니라고 하니 서서 맞짱 뜨면 안 된다. 아침에는 식전에 마시는 연한 숙차를 우려 마시고, 저녁에는 가볍게 저녁을 먹고 향기로운 우롱차나 홍차를 마시며 하루를 돌아보며 얘길 나누는 게 어떨까?               




나 혼자 살아도 좋을지 모르지만 외로운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부부가 둘이 살면서 각방에서 잠을 자더라도 대화가 없으면 한 집에 살아도 고독하다. 자식들이 다니러 와도 대화가 익숙하지 않으니 들어오면서 돌아가기 바쁠 수밖에. 대화가 필요한 세상에 차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혼자 누려서 얻을 행복이 있을까? 내 안에 있는 나, 혼자 있어도 나와의 대화가 있어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함께 살아야 일상의 소소한 일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소확행이라는 말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나누는 일상의 대화야 말로 함께 살아야 행복하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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