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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an 18. 2024

무설자의 차 생활

숙차로 시작해서 고수차 첫물차에 이르다

나의 하루는 찻물을 끓이며  시작해서 찻그릇을 닦아 정리하며 마무리된다. 하루를 시작하는 차는 숙차가 되고 마무리하는 차는 생차이다. 아침 차로 숙차를 마시는 건 밥을 먹기 전 빈 속이기 때문이다. 일과 중에는 녹차, 홍차, 청차와 보이차를 골고루 마시고 있다.     

   

보이차를 마시기 전에는 녹차로 차 생활을 했었다. 내 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셨던 원광 스님은 부산 차계에서는 어른이었던 차인이셨다. 스님을 찾아뵐 때마다 내어 주시는 차를 마시며 향미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어느 때쯤이었는지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생일 선물로 다기를 받게 되었다. 그날을 계기로 녹차를 구입해 마시면서 나의 차 생활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차 생활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만 매일 마시는 건 아니었다. 주말이나 휴일에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한 번씩 차를 우렸으니 차 생활이라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숙차로 시작했던 보이차 생활     


사실 나의 차 생활은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생에 보이차와 인연이 얼마나 지극했었는지 모르지만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루에 3리터 이상 마시게 되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차를 마시고 있으니 보이차와는 보통 인연이 아닌 건 분명하지 싶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거의 십 년은 숙차만 마셨는데 생차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편견이라 할 수 없었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생차는 2010년 정도까지 7542로 대표할 수 있는 대지차가 주류여서 쓰고 떫은맛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숙차와 생차는 다같은 보이차지만 탕색에서 달라보이듯 다른 차이다


숙차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다 밥 같은 차라서 그런지 물리지 않고 마실 수 있었다. 하루에 3리터 이상 마셔도 속이 편안해서 지인들과 함께 마시니 다들 좋아라 하며 차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지금은 그냥 지인에서 다우로 지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박스로 구입한 표일배와 숙차 한 편을 나누면서 차 전도로 다우를 삼은 지인이 족히 백 명은 넘었을 것이다. 표일배는 차 생활을 다반사로 할 수 있게 하는 최적의 다구이다. 숙차는 누구나 마셔도 좋은 속 편한 음료라서 표일배와 함께 차 생활을 권하다 보니 '차 전도사'라는 별호를 얻기가 어렵지 않았다.     


생차에 대한 편견을 허문 고수차     


2010 년경부터 고수차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운남 현지에 살면서 고수차를 만들고 있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분 있었다. 그분들은 고수차의 가치를 미리 알고 준비를 했었나 보다.    

 

그분들과 인연이 닿아 일찍 고수차를 소장하게 되었지만 그때도 생차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즐겨 마시던 숙차가 내 입에 걸리기 시작했다. 목 넘김이 불편한 차도 있었고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속이 메스꺼운 차도 있었다.      


특히 여름이 되면 거부감을 주는 숙차가 늘다보니 자연히 생차로 손이 가게 되었다. 보이차를 처음 접했던 2006 년에 마시던 대지차 생차와 달리 고수차는 차의 향미가 입맛에 감기듯 다가왔다. 구입 의사와 상관없이 내 수중에도 꽤 많은 고수차가 있었는데 그동안 왜  이렇게 좋은 차를 마다했을까 싶었다.


산지가 표기되어 있는 고수차와 상품명으로 적혀진 대지차는 생차의 향미가 큰 차이를 보인다

     

고수차라는 이름은 '古樹茶'라는 한자 새김대로 차나무 수령이 백 년 이상이라야 한다. 그렇지만 밀식 재배로 기르는 대지차와 구분해서 한 그루씩 키 큰 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들면 수령과 상관없이 통상 고수차로 부른다. 자연환경에 가깝게 기르는 차나무의 찻잎으로 만든 차는 밀식 재배로 키운 대지차와 향미가 달랐다.     


고수차 생차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되면서 차의 향미를 제대로 음미하며 보이차의 진미에 빠져 들게 되었다. 숙차도 점점 고급화되어 고수차로도 출시되고 있지만 다양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는 건 역시 생차를 따를 수 없다. 산지별로, 차나무의 수령과 채엽 시기에 따라 다른 생차의 미묘한 향미를 음미하게 되면서 점점 보이차의 깊이에 매료되고 있었다.   

  

아침차는 숙차, 저녁차는 생차    

 

아침에 눈을 떠 세면하고나면 바로 찻물부터 끓인다. 오전 여섯 시 반부터 일곱 시 반까지 아침차로 숙차를 마시는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오후 여덟 시부터 아홉 시까지가 저녁차로 생차를 마신다. 숙차와 생차를 각각 열 종류 가량 두고 바꿔가며 마시는데 손이 더 자주 가는 차가 있다.    

 

마시고 있는 차는 숙차와 생차 둘 다 고수차이다. 숙차는 발효 기법이 점점 개선되어 초기에 마셨던 차와는 근본이 다르다고 할 만큼 향미가 깊어지고 있다. 숙차에서 느끼던 숙미의 거부감은 이제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밤에 마시는 처물 고수차
천년보이차 첫물 야생차와 고수차

생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따질 게 많아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나는 산지나 수령은 제쳐두고 채엽 시기에 관심을 두고 살피게 된다. 조춘차, 두춘차, 명전차로 부르는 이른 봄 맨 먼저 올라오는 찻잎으로 만드는 첫물차에 입맛이 맞춰지고 있다.      


일과 중에는 녹차, 홍차와 청차, 흑차를 가끔 마시지만 역시 주로 마시는 건 생차다. 근래에는 야생차에 꽂혀서 다른 차보다 자주 마시고 있다. 첫물차의 가치를 일찍 알게 된 분이 2007년 경부터 첫물차가 나오는 시기에 고수차와 야생차를 구입해 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분과 교분을 나누면서 첫물차의 향미에 젖어들게 되었다.               




거의 20년간 보이차를 마시면서 소장하게 된 차의 양이 적지 않지만 근래에는 첫물차 위주로 차를 소장하게 된다. 산지의 특성이나 차나무 수령에 따라 향미가 다르지만 몸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이른 봄차-조춘차, 두춘차, 명전차는 확연히 다르다. 밤마다 혼자 차를 마시며 첫물차의 향미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나만 누리는 특별한 보상이다.     


삶의 방편으로 차 생활이라 따로 지칭하는 건 하루 일과가 차로 시작과 업무,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숙차를 마시며 일상의 귀감이 될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은 글씨로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업무를 보면서 차를 곁에 두고 마음을 다지며 일이 주는 스트레스를 삭인다. 하루의 마무리하는 밤 시간도 오늘도 살만한 세상을 살았다고 나를 다독이며 생차의 향미에 젖는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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