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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May 03. 2024

보이차 입문 11- 明前茶봄차와 穀花茶가을차

보이차는 수령 불문, 산지 불문하고 첫물차가 좋은 이유

차의 향미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우리나라 녹차를 구분하는 용어로 우전, 세작, 중작이 있다. 찻잎을 따는 시기에서 우전은 곡우 전, 세작은 곡우에서 입하 사이, 중작은 입하 이후이다. 우전차는 첫물차, 세작은 두물차, 중작은 세물차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은 차산지의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낮아서 청명 전에 첫물차를 만든다. 그래서 첫물차를 명전차, 두춘차, 조춘차라고 한다. 24 절기는 양력으로 쓰는데 곡우는 4월 19일, 청명은 4월 4일이므로 15일 차이가 난다.   

  

봄차와 첫물차     


이른 봄에 차나무에 싹이 돋아나 이파리 두 개가 달리면 찻잎을 따기 시작한다. 싹 하나에 이파리 두 개를 一芽二葉일아이엽으로 부르고 아를 槍창, 엽을 旗기로 바꿔서 일창이기로 부른다. 일아이엽으로 만든 첫물차를 가장 귀하게 여겨 값이 가장 비싼데 잎을 딸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생산량도 한정된다. 찻잎의 싹으로만 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생산원가가 높아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봄에만 찻잎을 따지만 보이차는 겨울을 제외하고 계절마다 딴다. 봄차는 맛이 좋고, 가을차는 향이 좋다고 하는데 마셔보면 봄차가 맛과 향에서 앞선다. 여름차는 맛이 싱거워서 잘 만들지 않지만 숙차의 모료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른 봄, 청명을 앞두고 새싹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싹과 잎 두 개가 되면 찻잎을 따서 명전차-첫물차를 만든다

   

봄차는 겨우내 뿌리에 양분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첫물차의 향미는 떫은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진하다. 청명이 지나 잎이 커지면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지므로 떫은맛이 강해진다. 그렇지만 일아이엽보다 일아삼엽으로 잎을 따면 생산량이 곱절로 많아지니 잎을 따는 시기를 늦추기 일쑤이다.  

   

해마다 보이차 봄차 산지별 예측 가격을 내는데 첫물차를 기준으로 한다. 첫물차로만 산지별 가격을 내놓는 건 아마도 생산량이 한정되어 가격 추이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봄차라 해도 첫물차는 그 이후에 나오는 차와 향미에서 천지차이라 할 정도로 빼어나다.


해마다 고시되는 산지별 봄차 예측 가격표-첫물차 고수차, 중수차, 소수차 가격차를 보면 찻잎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싱거운 맛이 나는 여름차

     

입하가 지나면 기온이 올라가면서 잎이 자라는 속도가 빨라진다. 봄차를 두세 차례 만들고 나면 뿌리에서 올리는 성분이 옅어져서 여름차는 싱거운 맛이 나게 된다. 그래서 여름에 딴 찻잎은 주로 숙차를 만드는 모료로 쓴다.

     

숙차는 생차와 달리 쇄청모차를 악퇴발효하는 과정에서 성분 변화가 많아진다. 발효 과정에서 폴리페놀 성분이 줄어 떫은맛이 적어지고 숙차 특유의 향미 성분이 생긴다. 이런 제다 특성으로 구태여 고급 모료를 쓸 필요가 없으니 여름차를 써서 찻값을 낮출 수 있었다.  

   

여름차는 성장 속도가 빠르니 생산량도 많아서 저렴하게 모차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생차보다 발효 과정이 더해지는 숙차가 가격을 싸게 공급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밀식재배로 관리하는 대지차는 기계로 채엽이 가능해서 357g 한 편에 1만 원대로 구입할 수 있는 숙차의 매리트를 만들어 왔다.    

 

보이차를 만드는 회사 중에 가장 큰 브랜드인 대익차는 지금도 만 원대로 숙차를 공급하고 있다. 생산원가와 물류비, 판매이윤을 포함한 가격이 이 정도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여름차라는 특성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생차를 절대로 여름차로 만들지 않는 건 아무도 마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곡화차로 부르는 가을차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차를 거의 만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는 거의 녹차여서 입하 무렵에 중작을 만들면 그해 제다는 마무리된다. 간혹 가을차로 백차를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다.    

 

보이차에서 가을차는 봄차와 차별해  곡화차로 부르며 나름대로 지명도를 부여하고 있다. 고수차라서 봄차가 비싸니 가을차로 만들어 가격대를 낮춰서 공급한다는 취지가 아닐까 싶다. 가을차를 만드는 고차수는 여름에는 차를 만들지 않고 나무의 기운을 보전한다. 여름에 잎을 빼앗기지 않아 기운을 차린 차나무가 졸지에 찻잎 수탈을 당하는 셈이다.

     

향미에서 가을차는 아무래도 봄차에 미치지 못하지만 맛이 담백하고 향은 깔끔하다. 첫물차가 아니라면 늦봄차가 좋을지 가을차가 좋을지는 마시는 사람이 선택할 몫이라 하겠다. 굳이 곡화차라는 명칭을 부여해서 가을차를 만들어 오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향미를 즐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차는 후발효차라는 특성으로 세월이 지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혹자는 이른 봄차, 첫물차는 후발효에 불리하고 쓰고 떫은맛이 많은 차라야 제대로 된 노차의 향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이차가 후발효라는 특성으로 장기보관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나중에 좋아질 차로 구입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보이차는 사계절 잎을 따서 만들 수 있다. 중국 운남성은 아열대 기후인 데다 상록수인 차나무는 계절을 불문하고 새싹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계절보다 봄차, 그중에서 청명 전에 만드는 첫물차-명전차에는 비길 수 없다. 수령은 확인하는 게 쉽지 않고, 유명 산지의 차는 가격대에서 시쳇말로 후들들해서 구매하는 게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2010년 첫물 고수차와 야생차-병면에 어린 잎으로 만들어진 모차를 볼 수 있다

  

수령 백 년 이상인 고수차, 노반장이나 빙도노채 등 특정 산지는 내 차가 아니라고 마음을 숙이는 게 좋다. 관심을 가져야 할 차는 수령 불문, 산지 불문에 부치고 첫물차-명전차이다. 이른 봄에 잎을 따서 만드는 첫물차는 대지차만 아니라면 어느 산지라도 좋다고 본다. 地乳지유라고 하는 차의 진미는 오로지 첫물차에서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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