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단독주택인문학 5
나의 첫 주택 작업이었던 부산 해운대 ‘관해헌’의 건축주가 새 집을 지어야 한다며 찾아왔다. 이십 년을 관해헌에서 살다가 집을 팔았다며 양산에 집터를 잡았다고 했다. 관해헌은 거실을 사랑채처럼 본채에서 떨어뜨려 배치해서 마치 정자에서 멀리 해운대 바다가 보이도록 설계가 된 집이다.
건축주는 이십 년이나 살았던 단독주택을 팔면서 새로 짓고 남을 값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돈도 자신이 양보해서 결정했다고 하면서 집을 팔았던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다르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은 지 20년이 지난 단독주택인데?
집을 지을 당시 건축주는 건설회사 임원이었는데 업무상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관해헌에 살다 보니 밖에서 하던 밤 모임(?) 장소가 집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보고 관해헌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관해헌은 손님을 불편 없이 맞을 수 있다는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이 아파트와는 다른 이 집만이 가진 자랑거리였다.
관해헌을 다녀갔던 사람들은 거의 다 이 집에 탐을 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은 지 이십여 년이나 된 집인데도 새집을 지을 수 있는 가격보다 더 높게 팔 수 있었다고 했다. 어째서 관해헌을 구입한 사람은 지은 지 20년이나 된 집을 그렇게 높은 가격을 지불했을까? 그건 아마도 이 집이 사람을 불러들이는 묘한 매력에 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관해헌은 거실과 침실을 떨어지게 별동 개념으로 설계했었다.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가 영역이 구분되어 가장과 안주인이 쓰는 공간이 달랐다. 관해헌은 한옥의 얼개를 채용해서 거실을 이층으로 된 침실동과 분리하고 정자처럼 정방형으로 평면을 구성했다.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멀리 있는 해운대 앞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손님들이 밤새 거실에서 머물러도 가족들은 침실에서 편히 잘 수 있었다. 밤 모임을 가지느라 일찍 귀가하는 날이 거의 없었던 집주인이었다. 그런데 그 모임의 멤버들이 집으로 찾아오니 관해헌에 살게 되면서 아이들은 저녁에 아빠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관해헌이 불러온 작은 기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집을 지으려고 하는 건 식구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함일 것이다. 한옥이라 부르는 우리 옛집은 손님을 위한 배려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서 사랑채는 품격과 여유를 가지도록 지었다. 바깥주인은 사랑채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안주인은 안채에서 집안일을 잘 살필 수 있도록 지은 집이 우리네 반가班家였다.
사랑채에는 일 년 내내 손님이 끊어지지 않도록 객을 응대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했다. 손님에게는 식사대접은 물론이요 잠자리까지 제공하면서 며칠을 묵어가는 걸 탓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집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면 가세가 기울었다고 보았다. 우리의 옛집은 식구들과 손님들이 한 집에서 불편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던 기초 단위의 사회였던 셈이었다.
사랑채에는 집안 식구들이 드나들지 않았고, 안채에는 손님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랑채는 손님들이 때를 불문하고 올 수 있었지만 안채는 평시와 다름없이 식구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 옛집이 얼마나 민주적인 집안 분위기였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가풍에 따라 독재적인 분위기로 지어진 집도 적지 않았지만.
사람을 기꺼이 불러들일 수 있어야 좋은 집이라고 보았던 것이 우리네 조상들의 집에 대한 생각이었다. 사람을 쫓아내는 집과 불러들이는 집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손님이 찾아들지 않고 식구들마저 밤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다면 집이 사람을 쫓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한다면 길택(吉宅)의 조건일 수도 있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집'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에 손님이 오지 않는 이유, 남의 집에 찾아가지 못하는 건 집의 구성 때문이다. 아파트는 거실에 손님이 있으면 식구들은 제 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이러니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 주거 생활이 서로 집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손님에 대해 잘 생각해 보자. 자식이 결혼해서 며느리와 사위가 새 가족이 되는데 한 집에 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새 가족인 며느리와 사위를 일 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손주가 태어나 매일 보고 싶지만 며느리와 사위가 오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다.
며느리와 사위는 우리 집안에 새 식구라 하지만 이 시대에는 손님과 다름없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며느리가 오면 시아버지가 불편하고, 사위는 장모님과 있는 시간이 편치 않다. 손주마저 오면 반갑고 돌아가면 더 반갑다니 이게 웬 말인가? 아파트는 사람을 내치는 집이 분명하다.
아파트가 좋아서 사는 게 아니라 단독주택에 살 방도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손님을 배려한 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게 문제이다. 아파트가 사람을 내쫓는 집이라는 건 밤늦은 시간인데 불이 꺼져 있는 집을 보면 알 수 있다. 손님이 우리집에 기꺼이 들어야만 행복도 함께 깃들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한다면 길택(吉宅)의 조건일 수도 있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집'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집이라야 사람을 쫓아내지 않고 불러들이는 집이라 할 수 있을까? 사위도 며느리도 편하게 묵어갈 수 있는 집이 이 시대의 길택吉宅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