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출강했었던 모교의 후배이자 제자들이 사무실을 찾아 왔었다. 십년 넘게 겸임교수로 강의를 나가다가 3년을 쉬었는데 선배 교수님이 한해만 강의를 맡아달라는 부탁으로 출강을 했는데 한 학기로 그만 두었다. 예순을 앞둔 나이다 보니 교수들도 후배, 외래교수들도 제자들인데다 학생들과는 30년이 넘는 세월차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학기 나에게 수업을 받았던 자식이라도 막내같은 학생들이 잊을만 하면 찾아 온다. 이 녀석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하는 재미는 자리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재잘 재잘 떠드는 아이들과 잔을 나누면서 어울리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시름이 싹 가신다.
강의를 나갈 때 학생들과 술자리를 만들면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반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반도 안 되는 학생들 중에 열 명 정도가 돌아가면서 찾아오고 있다. 강의를 나가지도 않는 어려운 선배를 교수님이라 부르며 이렇게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깜짝 선물까지 받으니 아이들 말로 대박이다. 30년을 뛰어 넘은 나이 차이에도 몇 시간을 웃으면서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찾아가고 함께 자리를 하는 아나로그식 만낭은 차라리 이벤트라고 해야 할 일이다. 이 아이들은 카페에서 테이블을 가운데로 마주 앉아서 카톡으로 얘기를 주고 받는 세대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며 맘껏 웃고 건축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나는 행운아라는 격한 감정이 올라왔다.
소주 자리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2차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주책스럽게도 내가 아이들보다 얘기를 더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더 늦으면 안 되는 시간이 되어 헤어지면서 악수를 청하는 나에게 안아달라고 하는 녀석들이 얼마나 이뻤는지 모른다. 그 아이들을 껴안으면서 마음에 늘 품고 험난한 인생길을 잘 안내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왔다.
오늘 찾아온 아이들 중에 한 녀석이 선물이라며 조그만 꾸러미를 내밀었다.
"교수님, 나중에 열어 보세요"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선물이라니 뭘까 궁금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말자 서둘러 풀어 보았다. 작은 쇼핑백 안에는 손편지와 볼펜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손으로 쓴 편지, 지금은 쓰기도 받기도 어려운 지난 시절의 흔적 같은 것이다. 깨알같은 글씨로 정성들여 쓴 편지를 보는 순간 읽기도 전에 감동에 가까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과목은 건축설계였다. 선물을 준비했던 그 학생은 눈에 띄게 작업을 잘 했지만 성격이 내성적이라 발표를 시켜보면 소극적인 편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발표 능력을 배우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스피치 학원을 다니기를 권했었다.
강의를 그만두었던 2학기부터 그 학생은 내가 권하는대로 스피치학원을 다녔었나 보다. 편지를 읽어보니 학원을 다니면서 발표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성격까지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했다. 그 학원에서 정기적으로 경연대회를 하는데 일등을 했다고 했다. 일등상으로 파카볼펜을 받고는 내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손으로 쓴 편지와 함께 제게 온 볼펜으로 답장을 보내줘야겠다. 짧은 글보다는 좀 길게 써서 곱게 접어서 넣은 편지봉투에 이왕이면 소인보다는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 보내고 싶다. 우표가 붙은 편지를 받아보는 제자의 표정을 상상해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날로그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정, 아날로그인 내 영향력이 디지털의 제자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했다니 역시 정은 누구나 받고 싶은 게 틀림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늘은 뭐라뭐라해도 정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다. (201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