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더위가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입추는 속여도 처서는 빈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올해는 옛말도 소용없이 한낮 더위는 35도를 찍고 있네요. 오랜만에 단비가 내리는데 더위는 기세를 낮추지 않는 오늘이 다회 날입니다.
멀리서 오는 다우가 두 분이나 있어서 비를 뚫고 올까 살짝 염려했습니다. 오늘 참석할 다우는 응관님, 상희님, 백룡님, 서영님, 선영님과 조금 늦어도 참석한다는 대명님과 저 무설자로 일곱 명입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다회에는 빠질 수 없다며 제시간에 집합입니다.
오늘은 홍차를 주제로 삼아 홍차의 원조 정산소종, 최고급 홍차 금준미, 세계 3대 홍차 기문홍차, 대세홍차 전홍에다 아쌈 홍차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다식이 풍성한 데다 다우들의 다담이 찻자리 시작부터 재미나게 흥을 돋웁니다.
에피소드인커피에서 내놓는 김밥과 허니브레드에다 사과, 배, 바나나, 쿠키까지 먹으며 정담을 나누다 보니 진지한 찻자리는 물 건너갔습니다. 팽주가 홍차 얘기를 끄집어내다가 다시 주워 담아 버렸지요. 맛있는 다식에 숙차와 홍차가 맛을 더해 얘기는 더 달콤해지니 이 흥겨운 분위기를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요?
정산소종에 이어 금준미와 기문홍차, 아쌈홍차까지는 잘 달렸는데 전홍은 다담에 밀렸습니다. 서영님이 준비한 대설산 야생차를 마무리차로 마시니 다식과 다담이 어우러진 찻자리가 더 바랄 게 없이 마무리됩니다. 우리 다우님들과 나누는 다담, 어디에서 이런 정담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시월 다회는 가을밤이라고 해도 좋을 때가 되겠지요? 시월 다회에도 우리 다우들과 함께 마셔야만 향미가 지극해지는 차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가을밤에는 청차류가 좋을까요? 홍인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노차도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우들과 나눈 귀한 다담을 글로 옮겨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쉽습니다. 혼자 마시는 차는 아무리 귀한 차라도 그냥 차일뿐이지요. 그렇지만 다우들과 다담을 나누며 마시는 차는 헛헛한 마음까지 채워주는 묘약이지요. 어떤 차를 마셨는지 묻지 말고 어떻게 마셔서 그렇게 좋은지 궁금해야 하는 게 우리 다연회 찻자리랍니다.
다연회 찻자리는 청차처럼 향기롭고, 홍차같이 다정하고, 숙차같이 격이 없고, 고수차처럼 감미로우며 노차처럼 깊은 분위기라 할까요? 구월 다회에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