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집에는 마당이 있으니
우리나라가 언제부터인지 외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해서 밥을 해 먹지 않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카페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모일만한 곳은 한집 건너 카페가 있다시피 하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의 주방과 거실이 주거공간에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방은 냉장고에서 냉동식품을 보관해서 데워 먹는 정도이고 거실이 TV를 보는 공간으로 그 역할이 한정된 지 오래되었다. 아파트가 씻고 잠자는 숙소의 역할로만 쓰고 있는 집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일상에서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인 아파트에서 발코니는 밖으로 돌출된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주거를 위한 최소한의 외부 영역이다. 발코니가 있으면 실내 공간이 밖으로 열릴 수 있으며 거실 앞은 손바닥 정원으로 꾸밀 수도 있고 항아리를 두어 장을 담가 먹는 집도 있다.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2미터 정도의 폭을 가진 발코니가 있는 집도 있는데 거실이 밖으로 완전하게 열리는 공간이 되었다.
발코니 확장이 법으로 허용한 이후 아파트는 외부와 단절된 닫혀버린 집이 되고 말았다. 내외부가 소통되지 않은 집은 폐쇄된 공간의 답답한 분위기로 기氣의 소통이 정체될 수밖에 없다. 고인 물이 썩듯이 정체된 기운은 사람을 밖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옛집을 살펴보면 동북아시아의 주거생활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중국 옛집은 밖과는 철저하게 닫힌 집, 사합원은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하고 중정을 중심으로 개별공간으로 출입하는 하나의 공간체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옛집은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출입하면서 내부공간이 나뉘어 복도를 통해 출입한다.
우리나라의 옛집은 내부공간은 마당이라는 외부공간과 이어져 내외부가 하나가 되는 공간체계를 가지고 있다. 집의 외부공간이 중국은 중정中庭, 일본은 정원庭園, 한국은 마당으로 그 쓰임새가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중정은 각 채로 출입하기 위한 동선을 수용하는 공간, 일본의 집은 내외부공간이 별개로 쓰이므로 정원 문화가 자리 잡았다.
집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를 살펴보면 중국은 건물을 대지 경계선에 맞춰서 지으면서 개구부도 중정으로 만 낸다. 일본은 주거생활이 집 안에서 이루어지므로 담장의 기능이 대지경계를 가르는 데 그친다, 우리나라의 집은 마당이 생활공간이 되므로 담장의 기능이 생활영역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중국은 외부로 철저하게 닫힌 집, 일본은 현관으로 출입하며 내부공간에 생활하는 집이며 우리나라는 마당으로 열린 집으로 볼 수 있다. 마당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주거공간이어서 사랑마당, 안마당, 정지마당, 행랑마당 등으로 내부공간과 연관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짓는 집도 우리 옛집의 마당 문화를 접목한 집을 지어야 ‘우리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택지개발로 단독주택 단지를 분양하면서 담장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든 곳이 많다. 인접필지와 담장이 없이 집을 지으라고 하면 내부공간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없게 되다 보니 기형奇形의 집이 될 수밖에 없다. 마당이 확보되지 못하고 외부와 이어지는 정원처럼 써야 하다 보니 억지로 중정을 내거나 공용공간을 이층에 두는 집이 지어진다.
땅을 밟고 살기 위해서 단독주택을 짓는데 마당으로 쓰지 못한다면 차라리 아파트에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억지 중정을 만들어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려다 보니 남향을 채광을 살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집을 짓게 된다. 다양한 마당을 가질 수 있어야 한국인의 유전자가 적응하는 ‘우리집’에 살 수 있는데 이를 알지 못하는 도시설계의 무지함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파트에서 발코니는 공중에 떠 있는 집의 최소한의 외부공간이다. 그런데도 발코니확장의 합법화로 인해서 그 외부공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발코니를 거의 2미터까지 허용하는 건축법이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아파트에서 마당을 얻을 수 있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아파트 발코니 폭을 넓게 쓸 수 있도록 한 정책 제안자는 아파트도 집답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아는 분이었나 보다.
아파트 내부 공간을 좀 더 넓게 쓰려는 바람 때문에 꼭 있어야 할 외부 공간인 발코니를 없애 버린 건 주거에 대한 정책 중에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한 것이다. 실내가 아무리 넓어도 갑갑한 집에 머물기 싫어 집밖으로 나도는 식구들은 카페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마당 없는 집에서 지내는 걸 견딜 수 없어서 그럴까?
단독주택을 짓기 전에 우리나라의 옛집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반응하는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식구 모두가 바라는 집을 어떻게 지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현대 생활은 종적질서가 무너지고 개인의 의사가 존중받아야 되기에 가장家長의 의지대로 식구들이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존중되어 일치된 결론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이 가진 유전자가 익숙한 집을 짓는다면 식구들 모두가 얼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옛집은 벽으로 구획된 틀 안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지 않고 모든 방이 마당과 이어진 하나의 공간 체계를 가지고 있다. 방마다 밖으로 출입할 수 있으므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될 수 있다는 의미도 찾을 수 있다. 개인공간이 내외부가 하나 되는 단위공간체계를 가지면서 내외간의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큰 공간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되는 집이 한옥이다.
집이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울타리 안의 공간 전체에서 내외부로 소통될 수 있을 때 생기가 넘치게 된다. 거실은 데크를 통해 마당으로, 서재에서 작은 정원으로 드나들 수 있고 주방은 뒤뜰과 이어지면서 풍요로운 일상이 전개될 수 있다. 내외부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집은 흐르는 물처럼 생동감이 넘치게 된다.
큰 잔디밭이 아니라 실내의 각 공간들과 이어진 다양한 마당이 역할을 가지는 집이라면 생기가 넘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땅을 밟고 살기 위해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한다면 각 영역마다 내외부가 하나 된 공간체계를 가질 수 있도록 얼개를 짜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어 집을 짓는다면 우리집의 고유한 외부공간인 마당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