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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재개발 아파트 공사 현장을 지켜보면서

건축사신문 2025년 6월호 시론

by 김정관

건축물은 지어지고 나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넘게 쓰게 된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가 오십 년도 쓰지 못하고 재건축 진단을 받아 새로 짓는다. 물론 구조 안전성, 주거 환경, 설비 노후도 등의 진단을 거쳐 재건축 가능 여부를 판정받게 된다. 재건축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공사비가 해결되지 않아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한다. 아파트는 도시는 물론 읍면 소재지에도 우뚝 솟아 랜드마크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촬영하면 아파트 때문에 대한민국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세대수가 되어 관리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아파트도 수명이 50년 정도인데 오피스텔, 주상복합 아파트나 빌라 등은 어떻게 관리가 되고 있을까?


머잖아 우리나라는 노후화된 주거 건축물로 인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국가적인 과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구조 안전성과 주거 환경, 설비의 노후화로 주거 생활이 불량해진 공동주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도심에서 늘고 있는 빈집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가지 않으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집은 거의 공동주택이다. 원룸이라 부르는 일인 가구 주택인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도 공동주택으로 대부분 민간 사업자가 지어 분양하는 주거 상품이다. 완판 분양을 목표로 모델하우스와 현란한 광고로 분양받을 사람을 유혹한다. 분양하자마자 완판이 되면 분양받는 사람도 대박이 났다고 하니 베스트셀러가 되는 셈이다.


근래 광주와 인천에서 공사 중에 사고가 났던 아파트도 아마 분양은 완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입주자 입장에서는 사고가 난 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고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지어져서 입주가 되었다면 그 이후에 그 아파트에서 어떤 일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완판 분양이라는 베스트셀러를 기대하는 아파트에서 행복한 삶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까?


백 년을 살아도 좋은 집, 십 년에 한 번씩 고쳐가며 대를 물려 살아도 좋을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을까?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수명은 백 년이 넘으니 건축사가 고심해서 지속가능한 주거를 위한 설계를 하면 설비를 교체하면 되지 않을까? 대단지 아파트, 초고층 아파트를 짓지 말고 우리집이라며 평생을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지었으면 좋겠다. 천편일률적인 설계로, 완판 분양 베스트셀러 상품이 아닌 건축사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스테디셀러 주택인 아파트는 실현 불가능한 꿈일까?




공동주택을 설계하는 건축사에게 어떤 권한이 주어질까? 설계 계약과 함께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용적률과 분양 시기에 맞춰야 하는 설계 일정이 주어질 뿐일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이 거의 다 공동주택인데도 불구하고 건축사에게 강요되는 지침은 사업자의 수익성을 높이는 내용이 주가 될 테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건 누가 고민해야 할까?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서면 집집마다 각양각색으로 살았던 지난 삶의 흔적은 지워지고 만다. 재개발 아파트가 대단지일수록 성벽처럼 울타리를 치고 동네에 남아있는 오래된 집과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일상이 단절되어 버린다. 재개발 아파트는 주거환경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오래된 주거지 곳곳에서 진행되지만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은 동네는 버려지는 분위기가 되고 만다. 아파트는 터무니없이 사업성이라는 상품성만 따져서 지어진다. 오래된 동네일수록 깊게 새겨진 터무니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무시하고 세우는 아파트는 사상누각이지 않을까?


오래된 집을 고쳐가며 살고, 헐어내야 할 집은 새로 지어야만 터무니가 유지되어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가 된다. 오래된 동네에 뿌리 깊은 터무니는 주민들의 삶에 안정된 기운을 준다. 오래된 동네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골목길과 주택에는 집을 떠나 멀리서 살고 있는 사람이 돌이켜볼 향수가 담겨 있다. 돌아와서 살 수는 없지만 내가 살았던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오래되어 볼품없는 동네라고 해도 지켜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거환경개선이 꼭 동네를 통째로 들어내어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야 해결되는 것일까? 새 주소를 쓰면서 동네 이름의 터무니가 담긴 동 단위 지명이 잊히고 있는 것처럼 무분별한 재개발로 우리가 살았던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오래된 동네를 밀어내고 재개발로 지어지는 대단지 아파트에서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을 고쳐 가면서 행복한 삶을 지키는 일은 건축사가 할 수 있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설계된 아파트는 오늘도 쉼 없이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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