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폐가를 보수해서 이수도를 알리는 기념관으로 쓰면 어떨까?
대학 동기 일곱 명의 모임은 42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 자식들도 하나씩은 결혼을 시켰고 혼자된 친구는 없으니 이만하면 다복한 벗들이라 하겠다. 육십 대도 고개를 넘겼지만 현직에 종사하는 능력자들이라 건강을 잘 챙겨 복 받은 인생을 오래 함께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친구도 있고, 근무지가 집을 떠나 있는 친구도 있어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마침 외국에서 근무를 하는 친구가 휴가차 귀국해서 현충일 전날에 일박이일 여행을 했다. 목적지는 부산에서 지척인 거제 이수도이다. 이수도는 근래에 핫플로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제는 일박 삼식이다.
숙소는 볼품없고 불편하지만 하룻밤 묵는데 따질 게 못된다. 이수도는 섬을 돌아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는 날 중식과 석식, 오는 날 조식으로 세끼 밥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수도 인근은 멸치가 많이 잡히고 가자미 오징어도 잡히니 해산물로 차린 밥상이 너무 맛있어서 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새 주소판에 세대주 이름이 적혀 있지만 집은 비워진지 꽤 오래된 듯 보였다. 지금 이대로 방치되면 머지않아 허물어지고 말 것처럼 보였다. 주인부부가 살았던 본채와 맞은편에는 방이 두 개가 들어있는 곁채가 있다.
본채와 곁채를 합쳐도 스무 평이 채 되지 않은 집, 층고도 아주 낮아서 별로 크지 않은 내 키에도 처마높이가 낮아서 머리를 숙여 들어갈 정도이다. 이 집을 지을 당시에는 거제도가 육지와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수도는 다시 섬이었으니 외딴곳이었을 것이다. 그런 섬에 집을 지었으니 집의 규모는 좁고 낮을 수밖에 없었겠다.
이 섬에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었을 것이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은 아이를 몇이나 낳아 키웠을까? 이수도와 거제는 지척이라 오가는데 큰 불편은 없었겠지만 살아가는데 어찌 힘이 들지 않았겠는가? 곧 허물어질 듯 겨우 버티고 있어 보이는 집은 층고가 낮아서 서서 움직이기도 어려우니 고쳐도 살 사람이 없을 터이다.
그렇지만 이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주거를 보존하는 것도 섬의 터무니를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 집이 허물어지기 전에 거제시에서 고쳐서 원형을 복원해 보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섬은 일박삼식으로 평일에도 수백 명이 찾아온다. 일박삼식에 일인당 9만 원이면 수입이 꽤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주민들은 거의 외지인이니 폐가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