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신문 2025년 12월 호 시론
올해 건축사 시험은 7716명이 응시했는데 그중 6.8%인 526명이 건축사 자격을 얻게 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건축사가 된 분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후배 건축사가 된 이 분들이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 과연 축하를 받아야 할 상황이 아닌 게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한 수험 생활을 거쳐 얻어낸 건축사 자격으로 이들이 꿈꾸는 미래를 열어갔으면 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가져본다.
건축사 헌장 1조는 ‘건축사는 조형창작 예술인으로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라고 되어 있다. 건축사는 조형창작 예술인이며, 창의력을 발휘해서 건축물을 설계하는 전문가이며,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해야 할 사명감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 공인(公人)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새내기 건축사들이 바라보는 선배들은 건축사 헌장에 명시된 내용대로 당당하게 이 세 가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을까?
건축사 자격을 부끄러워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작품이라고 하는 사람일수록 ‘건축가’라고 자칭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당연히 건축사라야 할 텐데 건축가로 자신의 직업을 언급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대중 매체에 직업을 알릴 만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는 건축사들이 직업을 건축가라고 소개하고 안타깝다. 이런 형편인지라 우리 사회는 건축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에 뜻을 같이 하는 건축사들이 모임을 결성하여 전시회를 가지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바람직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임의 구성원이 거의 건축사인데도 ‘건축가의 모임’이라고 하고 있으니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회원 구성원 중에 건축사 자격을 가지지 않은 건축인들도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겠으나 건축사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다.
몇 해 전 부산다운건축상에 입상해서 받았던 상장의 문구가 ‘귀하께서 설계한’이 아니라 ‘귀사에서 설계한’이라 되어 있었다. 건축물의 설계자는 사무소가 될 수 없고 건축사라야 하니 ‘귀하’로 수정해 주기를 요청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부산건축사 회관 입구에는 설계자가 새겨진 조형물이 서 있다. 여기에도 세워졌을 때 설계 건축사 이름 대신에 건축사사무소 명만 새겨져 있었다. 필자가 몇 차례 수정을 요청해서 지금은 설계 건축사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다.
부산건축사회 예산에 홍보비가 책정되어 대중들에게 건축사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 아직도 시민들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일을 하는 직업을 건축사보다 건축가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부산시의 별정직 공직인 ‘총괄건축가’나 시정의 자문역인 ‘공공건축가’라는 명칭으로도 건축가가 건축사보다 더 시민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신문 기사에도, 공공 매체에도 건축사는 보이지 않고 건축가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건축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건축가로 쓰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건축사를 사칭하여 건축사 업무를 하면 건축사법 위반하는 범법자가 된다. 그런 불법 행위자는 대부분 건축가로 자신을 알리는데 건축사 스스로 건축가라고 활동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건축사회는 예산을 들여 건축사라는 직업을 사회에 알리고 있는데 건축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건축가라고 쓰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려고 고군분투해서 어렵사리 뜻을 이루고 나면 그들도 건축가로 활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건축 설계는 건축가가 하는 일이고 건축사는 건축 행정과 감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대중 매체에서 소개되는 건축물의 설계자는 건축가 누구라고 되어 있으니 건축사가 설계하는 건축물은 설계비 협의에서 불리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염려가 기우가 아니라면 건축사라고 자신을 알리기보다 건축가라고 내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도 7716명이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려고 고군분투해서 6.8%만 합격의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선배들이 건축사 자격을 하찮게 여기며 건축가로 활동하는 걸 보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건축사 자격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져야 우리가 바라는 설계비를 받을 수 있고 건축사로 활동하는데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건축사회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건축사를 홍보한다고 해도 건축사 자신이 건축가를 내세운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