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이름 석 자 새기지 못하는 그 존재의 가벼움

대한 건축사신문 2025년 12월 24일 자 게재

by 김정관

건축사, 이름 석 자 새기지 못하는 그 존재의 가벼움

불황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답답한 요즘 상황이 마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에 있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경기가 나아지고 얼어붙은 우리 일도 풀릴 것이라 여겼는데 이제 기대도 할 수 없겠다는 심정이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얼마가지 않아서 IMF 외환위기를 맞이했을 때는 이겨내야 한다는 각오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사면초가로 불안과 좌절감에 아침을 맞이하는 게 두려울 지경이다.


건축사 자격증만 취득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었던 시절이 선배 건축사들에게는 있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로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건축사의 자리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업무 원가는 최저 임금이 오르는 분위기로 실감하지만 설계비는 감리비보다 못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건축사가 하는 일을 우리 사회는 건축허가를 받는 행정 서류 도서 작업이라 여기는 것일까?


건축사의 작품이라고 하는 건축물에 설계자로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부산시에서 매년 우수건축물을 뽑아 시상하는 부산다운건축상은 수상명패를 해당 건축물에 부착한다. 그런데 그 명패에 건축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김해시의 우수건축물 명패는 청동으로 제작되고 설계 건축사 이름도 새겨져 있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우수한 건축물을 뽑아 시상하는 행정의 방향이 김해시가 부산시에 앞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건축사가 되면서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게 나오면 낙관을 찍듯이 설계자로서 내 이름을 새긴 명판을 붙이고 싶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다짐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붙은 딱 한 점이 있다. 그 집은 건축주와 시공자가 삼위일체로 호흡이 맞아서 다들 만족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건축주께서 우리 모두의 이름을 새겨 우리의 작품으로 도장을 찍어 남기고 싶다고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건축사를 중시해야 하는 건 도시의 품격을 만들어내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민간 건축물 설계가 전무하다시피 한 지금은 공공 건축물 설계 경기에 건축사들이 목을 매고 참여하는 중이다. 그런데 설계비가 자유 경쟁으로 책정되는 민간 건축물에 비해 공공 건축물은 수가가 나아 보이지만 설계가 끝나 정산을 해보면 결손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백년지대계(白年之大計)로 지어야 하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사를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홀대하는 것일까? 30년 전보다 못한 설계비로 계약하자마자 허가를 받아달라고 닦달하는 건축주, 온갖 심의로 건축사의 창작 의지를 훼손하며 설계 의도 구현은 고사하고 작업 기간에 심의위원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건축사의 존재 가치는 얼마만큼일까? 일없이 보낸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이름 석 자 새길 작품 몇 점 남기지 못하고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한 심정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기사 원문 읽기 : http://www.anc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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