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 '더봄'-'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30
보이차, 간 맞추어 우려야 맛있는 차
보이차는 어떻게 우려서 마셔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면 된다고 하겠다. 무책임한 대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 특히 숙차는 건차의 양이 많아도 좋고 좀 적어도 상관이 없어서 편하게 무려 마시고 싶다면 커피메이커에 넣고 하루 종일 내려 마셔도 좋다. 좀 진하다 싶으면 물을 섞으면 되고 연하면 차를 더 넣어 우리면 그만이다.
차를 마시는 건 다도(茶道)인데 그렇게 함부로 우려도 되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다른 차류와 달리 보이차를 마시는 건 도(道)가 아니라 일상생활, 즉 차 생활이기 때문이다. 밥 먹는데 특별한 방법이 따로 없듯이 보이차는 어떻게 우려 마셔도 된다. 다만 더 좋은 향미를 즐기려면 아무렇게나 우려서는 곤란하다. 아무렇게 우려 마셔도 되는 보이차를 더 맛있게 우리는 방법을 알아보자.
차를 우리는 방법은 육대차류의 특성을 알게 되면 차마다 달리 우려야 하는 길이 보인다. 육대차류는 불발효차인 녹차, 약발효차로 백차, 경발효차는 청차와 황차, 중발효차로는 홍차와 후발효차인 흑차를 말한다. 여기서 발효라는 말을 썼지만 흑차를 제외하면 사실은 산화로 쓰는 게 옳다. 보이차의 숙차와 호남성 등의 흑차는 미생물 작용을 이용해서 차가 만들어지므로 발효차가 되지만 그 외 차류는 산화를 통해 완성된 차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차를 산화나 발효를 통해 만드는 건 폴리페놀 성분의 쓰고 떫은맛을 줄여 달고 순한 맛을 얻기 위함이다.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남아 있는 차는 녹차와 보이차 생차이고 산화와 발효를 많이 시킨 차는 홍차와 보이차 숙차이다. 따라서 녹차와 생차는 차를 우릴 때 쓰고 떫은맛을 줄여 추출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홍차와 숙차는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 우려도 좋다.
찻잎을 가루로 만든 말차는 뜨거운 물에 풀어서 마시는데 왜 쓰고 떫은맛이 적을까? 그건 차나무를 재배하면서 차양막을 씌워서 그늘을 만들어 햇볕을 막아 재배한다. 폴리페놀 성분은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많이 생성되므로 그늘 아래 재배한 차나무는 폴리페놀 성분이 적고 아미노산 성분이 많아져서 감칠맛이 많아진다. 햇볕이 강하지 않은 시기에 찻잎을 따서 만드는 첫물차가 감칠맛이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산화나 발효가 없거나 적은 차인 녹차와 보이차 생차는 폴리페놀의 쓰고 떫은맛이 적게 나오도록 우리는 게 좋다. 그러므로 녹차나 생차는 차를 우리는 기술에 따라 향미가 달라질 수 있다. 산화도가 높은 홍차나 발효를 충분히 시켜 만든 숙차는 폴리페놀 성분이 적으므로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서 우려도 좋다. 차 생활을 시작하면서 홍차나 숙차는 어떻게 우려도 맛있는 차로 마실 수 있지만 녹차나 생차는 어떨까?
녹차와 그 해 만든 생차를 우릴 때 쓰고 떫은맛을 줄이려면 물 온도를 80도 아래로 하는 것이 좋다. 끓는 물을 바로 붓고 차를 우리면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추출되기 때문이다. 녹차 첫물차는 물 온도를 80도 이하로 해야 풋풋한 차의 향미와 함께 감칠맛이 더욱 두드러진다. 팔팔 끓인 찻물을 숙우에 붓고 온도가 떨어지도록 기다린 뒤에 차호에 부어 차를 내려서 마시면 된다.
그런데 보이차는 이런 절차를 생략해도 좋다. 숙차는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서 내려도 되고 생차라고 해도 햇차를 마시는 경우보다 오 년, 십 년이 지난 차를 우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차라고 해서 물 온도를 맞춰 제 맛을 찾을 필요는 없고 건차의 양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100cc 용량 차호나 개완에 건차의 양 5g을 기준으로 우려서 차맛이 내 입맛에 맞는지 살펴서 간을 맞춰본다.
보이차 생차는 녹차와 비교하면 폴리페놀 성분이 두 배 가량 많다. 차를 적게 넣고 우릴 때 시간을 두고 내리는 것과 좀 많다 싶을 정도로 넣고 바로 내려서 차맛을 비교해서 음미해 보자. 내 경우에는 후자가 입맛에 맞아서 그렇게 우려 마신다. 시간을 두고 차를 내리게 될 때 잠깐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쓰고 떫은맛이 부담스러웠다. 100cc 차호에 맞는 양이 4g, 5g, 6g 중에서 찾아서 뜨거운 물을 붓고 바로 내려 마시면 되겠다.
보이차는 긴압차라서 덩어리 진 상태에 따라 한번 우릴 건차의 무게를 눈대중으로 가늠하기 쉽지 않다. 5g과 4g, 6g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한번 우릴 양으로 일정한 분량을 저울을 써서 계량하는 건 필수라고 본다. 100cc 차호에 건차 5g을 기준으로 내 입맛에 맞는 양을 찾는 게 중요하므로 다소 귀찮을 수 있지만 주방용 저울을 꼭 쓰기 바란다. 보이차는 간 맞춰 우려내는 게 가장 중요해서 건차를 일정한 양으로 정하면 그다음은 편하게 우리면 된다.
노차는 별도로 하고 숙차나 홍차는 어떻게 우려도 맛있다. 표일배에 우려도 좋고, 커피메이커를 쓰면 겨울에는 하루 종일 따뜻하게 마실 수 있다. 여름에는 진하게 우려서 냉장고에 보관해서 얼음이나 차가운 물을 섞어 마셔도 좋다. 산화나 발효 공정을 거친 홍차와 숙차는 쓰고 떫은맛이 많지 않기 때문에 커피와 다름없는 방법으로 마셔도 좋다.
생차는 햇차부터 십 년 정도까지는 풋풋한 차의 향미를 즐길 수 있다. 십 년이 지나 이십여 년이 지나면 탕색이 점점 진노랑이나 붉은빛을 띠게 되는데 후발효차의 특징인 변화되는 차의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 생차가 삼십 년이 지나면 붉은색이 짙어지면서 갈색으로 변해간다. 노차(老茶)라는 용어를 쓰게 되는 시기가 이 무렵부터인데 보관 환경에 따라 차의 변화는 향미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숙차는 쇄청모차를 발효시켜 폴리페놀의 쓰고 떫은맛을 줄여 바로 마실 수 있도록 한 차다. 숙차가 개발된 초기에는 숙미라고 하는 발효취(醱酵臭)가 차를 마시는데 부담이 되었지만 지금은 고급 모료를 쓰고 발효기술이 나아져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차는 시간이 갈수록 폴리페놀 성분이 산화되면서 향미가 긍정적으로 변화되는데 반대로 숙차는 보관 여건에 따라 향미가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오래된 생차나 숙차를 마시면서 관심을 두면 좋은 게 엽저를 살피는 일이다. 생차, 숙차를 막론하고 엽저가 딱딱하거나 검게 탄화되었다면 목 넘김에서 부담이 느껴질 것이다. 이런 차를 우려 마시면 탕색은 맑을지 몰라도 머리가 아파오던지 속이 불편한 증상이 오기 십상이다. 보이차를 장기 보관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게 습기를 차단하는 일인데 해로운 곰팡이가 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는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게 상책이다.
보이차 생활이 다른 차류를 마시는 것보다 편한 건 그냥 뜨거운 물만 부어 마시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생차는 제다 과정에서 폴리페놀 성분을 완화시키는 처리가 덜 되었기 때문에 쓰고 떫은맛을 조절해서 우려야 한다. 십 년 정도 지난 생차는 산화가 이루어지고 있어 건차(乾茶)의 양을 적정하게 계량해서 자신에게 맞는 차탕의 간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만 숙차나 30년 이상 오래 묵힌 생차인 노차는 양을 맞추는 것에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우려 마셔도 좋다.
다례(茶禮)나 다도(茶道) 등 차를 통해 가지는 의례나 절차를 따지는 자리에서 차를 우리는 건 일상 차 생활과는 별개라고 보면 되겠다. 녹차나 청차, 혹은 일부 고급 홍차를 우리는 건 고급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보이차는 밥 같은 차라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우려 마셔도 좋다. 그렇지만 보이차도 고수차는 산지에 따라, 차나무의 나이에 따라,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다른 향미를 찾아 마시려면 자신만의 차 우리는 방법이 달리 필요하겠지만 사람마다 다른 차이일 뿐이라 생각한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30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7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