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8582 중차패 청병이라는 노차
보이차를 좋아하던 선배님이 작고했을 때 유품이라며
형수께서 제게 건넸던 노차가 있습니다.
선배님은 저와 자주 시간을 같이 했는데
왜 그 노차에 대해 말을 했던 적이 없었을까요?
선배님은 보이차를 즐겨 마시기는 했지만
차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게 온 선배님의 노차는 중차패 포장지에
80년대 8582라고 메모지를 붙여 놓았습니다.
선배님이 작고한 지도 십 년이 지났는데
그 당시에도 80년대 8582는 적잖은 값이었을 텐데요.
선배님은 넉넉지 않은 여건에서 값을 치르면서
큰 마음을 먹었을 것이니 얼마나 이 차를 아끼셨을까요?
몇 번 우려 드시지 않은 온 편인 차를 보니
병면 색깔이 어둡고 병면 전체에 백상이 보입니다.
이 차를 다시 우려 마셔 보아도 온전한 노차가 아니라
습창 발효로 만들어낸 작업차가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 전문 출판사를 운영했던 선배님은
회사를 어렵게 꾸려나갔을 테니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선배님은 아마도 힘든 일상을
차를 마시면서 달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랬으니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값비싼 노차를 장만했을지도 모릅니다.
선배님이 자신을 위해 값비싼 노차를 구입하고
홀로 이 차를 우려 드시며 스트레스를 달랬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글을 쓰면서 이 차를 우려 마시는데
제 입맛으로는 한 모금도 제대로 삼키기 어렵습니다.
노차는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환상을 가지게 하니
어떤 향미라고 해도 노차는 이 맛이라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제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맛이지만
선배님은 이 차를 마시면서 위안을 받았길 바랍니다.
아직 가을이 남았는데 이미 잎이 지고 만 빈 나뭇가지를 바라보다
노차와 고인이 된 선배님을 떠올려 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