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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차수 보이차를 마시면서 가지는 무위의 시간

수령 천년 이상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와 닿은 소중한 인연

by 김정관

사진은 이무 박하당 고차수 다원 풍경



제 일상의 시선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입장을 고수하는 편인데

차를 대하는 태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알아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명심하면서 생활하고 있지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의문도

종교나 철학에 의지하여 성현의 가르침에서 찾으며 살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역사를 익히며 알게 되는 사실과 성현의 가르침이

삶의 지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됩니다.



스무 해 가까이 보이차에 깊이 매료되는 저의 차 생활도

뿌리를 중시하는 제 삶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보이차를 만드는 운남의 차나무가 차의 원종이며

차를 만드는 제다방법도 가장 단순해서 차의 원형에 가깝다고 봅니다.


숙차가 현대 보이차라면 면면히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전통 보이차는 생차지요.


그래서 수령이 오랜 고차수(古茶樹)와 수많은 차산지의 차를 찾아서

차 향미를 음미하는 건 정말 흥미롭고 즐거운 일입니다.



근래에 인연이 되어 그동안 이름만 듣고 마실 기회가 없었던

백앵산, 이무 만송 왕자산, 이무 박하당 차를 마셨습니다.


백앵산 수령 천 년 이상 이천 년 된 고차수 찻잎으로 만든 차를 마셨는데

그건 인연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희유하고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지요.


만송과 박하당 차는 향미가 은근해서 달고 쓰다는 맛 너머에 다가가서

후운과 차기에 접근하며 제 구감을 확장하게 되니 제 맛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수령이 천년 이상 오래된 고차수(古茶樹)의 찻잎으로 만든 차는

맛과 향만으로는 진미(珍味)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보이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시행착오의 산물로 적잖은 차가 있지만

이제는 내가 마실 차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6대 차류 대부분은 바로 다가오는 향과 맛을 음미하지만

보이차는 후운과 차기로 차와 내가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갖게 되지요.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생태 환경에서 자라는

백 년 이상 오래된 차나무의 깊은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는 건 보이차를 마시는 특권입니다.


왜 하필 보이차를 마시느냐고 묻는다면

인위적이지 않은 무위의 산물(産物)과 내가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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