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내 영혼을 자유롭게
일본 유학시절 도쿄 고엔지(高円寺)에서 2년 정도 자취를 했다. 다락방이 있는 원룸맨션으로 친구와 친구동생, 나 이렇게 셋이 살았다. 10 가구 정도 되는 작은 맨션 단지였는데 건물 뒤로 목욕탕이 있었다. 일본 목욕탕에 호기심이 발동해 어느 날 혼자 가본 적이 있다.
목욕탕 마크가 그려진 노렌(상점 입구에 치는 작은 막)을 저치고 들어가니 나이 드신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이쿠라데쓰까?(얼마예요)"라고 묻자 "산뺘쿠엔데쓰.(300엔입니다)" 하신다. 돈을 지불하고 들어가니 왼쪽은 여탕이라는 표시로 빨간색의 노렌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마크가 있고 오른쪽에는 진한 남색 노렌이 쳐져 있다. 다행히 혼탕은 아니었다.
여탕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남탕과 여탕 사이의 벽이 천정까지 닿아있지 않고 낮은 담벼락으로 나뉘어 있었다. 남탕과 여탕을 가르는 벽의 높이는 약 170cm 정도. 남탕 쪽에서 남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만약 가족들과 함께 가 미처 챙겨가지 못한 샴푸나 때밀이 수건이 있다면 까치발로 서서 주고받아도 될 판이었다. "여보, 샴푸랑 떼수건 좀 건네줘." 하면서.
탈의실에는 나 혼자. 오래된 목욕탕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일본 목욕탕들은 원래부터 열쇠가 달린 락커를 사용하지 않는지 대나무로 짠 바구니들만이 칸칸이 정리되어 있었다. 낯선 땅 일본에 와서 다른 곳도 아니고 벌거벗어야 하는 목욕탕에 오다니 내 자신이 신기했다. 왜냐면 이런 곳을 평소에 절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외투부터 하나씩 벗어 가지런히 개어 대나무 바구니에 넣은 후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목욕탕은 6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사이즈였다. 거기에 두 명의 여자가 벽을 향해 앉아 목욕을 하고 있었다. 샤워기도 조심조심, 바가지에 물을 담아 몸에 뿌릴 때도 조심조심. 옆 사람이나 주변에 물이 튀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씻는다.
그 조용한 분위기에 나도 똑같이 해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 목욕하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물이 튀지 않도록 몸을 씻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 후로도 목욕탕을 자주 갔다. 요금도 싸고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재충천을 하기 위해서.
집에서 하는 가벼운 샤워와 목욕탕은 씻는다는 관점에서는 같지만 몸이 느끼는 상태와 컨디션은 다르다.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벌거벗어야 하는 부끄러움이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탕으로 들어가서 온몸을 데우고 묵은 때를 밀고 나오면 전신이 노곤노곤해지면서 온몸의 피로가 확 풀린다. 막혔던 혈이 풀리면서 혈액순환도 되고 상쾌하다. 젖은 머리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도 생긴다. 괜스레 미소 짓게 되는 개운함이 목욕탕에 있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글쓰기를 하면서 별안간 그 시절 목욕탕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글을 쓰는 번거로움과 글을 쓰면서 벌거벗어야 하는 때도 오기 때문일까. 목욕탕에 잘 차려입고 가던 대충 츄리닝 바람으로 가던 탈의실에서 다 벗어야만 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를 하면서 하나씩 벗어젖혀야 내면의 나를 만날 때가 있다. 처음엔 귀찮기만 하던 것이 목욕 후의 개운함에 중독돼 다시 목욕탕을 가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갇혀 있던 영혼이 글쓰기를 통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목욕탕에서 낯 선 사람들이 벌거벗어도 그 안에서는 부끄러움이 없듯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글쓰기를 하며 만나게 되는 이곳이 글쓰기 목욕탕 같기도 하다. 가끔은 서로의 민낯을 봐야 하고 어떨 때는 서로 벌거벗은 문장으로도 만난다. 그래도 민망하지 않고, 체면이 깎일 일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나에게 글쓰기 목욕탕이다.
아침 6시. 오늘도 슬리퍼를 질질 끌며 하품을 하며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글쓰기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곧 다 벗어졌기고 뜨근한 온천물에 들어가 지친 피로를 풀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하다. 벌거벗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곳, 글쓰기 목욕탕에서 내 영혼을 자유롭게, 릴렉~~스!
아고,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