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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아들을 위해 결심한 미국이민

미국이민자들 저마다 사는 이야기

by lemon LA

B맘은 아들이 ADHD이다. 한국에서 유치원까지는 그럭저럭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는데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교육 열기가 뜨겁다 보니 조금이라도 수업에 방해가 되는 아이들은 귀찮고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점점 따가운 시선과 눈초리로 대하면서 B맘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 아빠는 거의 매일처럼 야근에 시달려 밤 12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오니 서운한 마음에 다투는 날이 늘어나면서 결국 미국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으로 입학하게 된 아들. 역시 미국 담임 선생님도 금방 알아차린다. 하지만 미국 초등학교에는 ADHD 뿐만 아니라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장애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스페셜 케어반이 있다. 각 분야의 선생님들이 모여 이 이아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수차례 모이고 회의를 거쳐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결국 스페셜 케어를 받으며 초, 중, 고를 졸업해,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어 하는 전공도 찾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미국에 와서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서 감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찾아서 기뻐요."

미국으로 이민온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B맘은 늘 감사함을 표현한다. 한국에서의 기억들은 아찔해 기억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그곳은 밀림처럼 정글처럼 무섭고 살벌한 경험만 남았다고 말한다. B맘은 미국 이민 10년 차.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긴장하고 슬펐던 눈빛은 온 데 간 데 없고 지금은 그늘 없이 환하게 웃는 날이 많다. 엄마란 결국 아이가 행복해야 따라서 행복해지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미국에 와서 이런 가족들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된다. 한국 교육에 적응을 잘 못해 갑자기 가족 이민을 결심하게 된 경우이다. 어떤 가족은 성공적으로 안착을 하기도 하고, 어떤 가족은 아직도 해결해야 되는 문제 속에 있기도 하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미국이 맘이 편해요. 일단 공부스트레스가 그리 많지 않고 차별보다는 특별한 대우를 받으니까요."


특별케어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과 만날 때면 그 대화에 낄 수가 없어 조용히 듣고만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 대화를 듣고 있자니 한국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런 가족들을 대했나 생각해 보게 된다. B맘이 한국에서 힘들어했던 선생님과 학부모들, 그리고 반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불편한 시선과 편견을 가지고 대했을지 모른다. 특별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좋은 마음과 태도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못한 특별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는 낯설어하기만 한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서 소수자 (minority)로 살아보니 특별케어가 필요한 그 아이들의 심정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이민자로 현실 속에 부딪치게 되는 벽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를 들어,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만났을 때 원활하지 않은 대화(듣기만 하고 순응하는 대화...), 학부모 모임에 가면 백인들 사이에 낄 수 없는 분위기(외로움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한참 생각한다), 학교를 가도 직장을 가도 부족한 영어와 아시안이라는 한계점이 불편하고 답답할 때가 한두 번(거의 대부분)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꼭 누군가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미국 사람들이 있다. 설명 필요 없이 그가 누구이건 그냥 고맙다. 기버를 실천하는 사람들. 기버의 사전적 의미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흔히 기버는 기부하는 사람, 즉 돈이나 물질적인 것만을 주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상냥한 미소, 친절한 태도는 어떤 물질보다 돈보다 값진 것들임을 이곳에선 일상처럼 가르치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하이" "굿모닝" "헬로" 등등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이런 문화의 하나이리라.


미국 작가이자 문학가인 바바라 드 안젤리스는 "사랑과 친절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친절은 특별함을 만듭니다. 그것을 받는 사람을 축복하고, 그것을 주는 사람(기버 giver)인 당신도 축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부끄럽게도 사랑과 친절을 먼저 주며 살지는 못했다. 많이 받고 나서야 이것이 얼마나 팍팍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 누구에게는 행복하게 살 만한 이유가 되는지 알게 되면서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지금은 산책을 나가면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하이" "헬로" "굿 이브닝"...이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어김없이 따뜻한 표정으로 좋은 인사가 되돌아온다. 가끔 쇼핑몰이나 공중 화장실 등에서 휠체어를 타고 문을 열지 못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도우려 한다. 누군가에는 작은 친절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불안하고 위축된 마음을 녹여 준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우리 모두는 기버로 살 수 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따뜻한 말 한마디, 상냥한 미소, 친절한 태도로 대할 때, 어두운 방안을 작은 초하나로 환하게 밝힐 수 있듯 빛과 온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으리라.


오랜만에 만난 B맘의 환한 웃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스쳤다.

'특별케어가 필요한 이들과 가족들이 느끼는 따가움이 따스함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눈물이 넉넉한 웃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버가 되는 것은 어떨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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